[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사회에디터석 24시팀 기자 3strings@hani.co.kr 경영학에 ‘미투(me too) 전략’이라고 있지요. 선발주자가 성공적으로 앞서간 발자국을 후발주자가 열심히 따라가는 전략을 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보다 3주 늦은 지난해 11월19일부터 맞불집회를 시작한데다 본래 집회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보수단체가 집회 후발주자로서 미투 전략으로 최근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박사모’ 등 50여개의 보수단체가 설립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탄기국방송을 만들어 태극기 집회를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보수단체 집회에선 낯선 풍경이지요. 또 촛불집회의 ‘사이다 발언 모음’처럼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인터넷에서 널리 퍼지는 발언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죠. “촛불집회에 참석자 수는 적어지고 있는데 태극기집회에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모여서 감동받아 울 지경이다”(‘수원에 거주하는 고1 학생’이라는 김아무개군), “간첩세력들과 촛불폭도들의 내란 선동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바라만 볼 수 없어 자비를 들여 호주에서 날아왔다”(‘호주에서 온 애국청년’이라는 손아무개씨) 이뿐 아닙니다. 깨알 같은 미투 전략이 이어집니다. 집회 이름도 모방했죠. 탄기국은 지난해 12월31일 집회 이름을 애초 ‘2017 승리를 위한 송구영신 태극기 집회’로 지었다가 촛불집회 쪽에서 ‘송박영신’(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을 들고나오자, 이에 맞서 ‘송화영태’(촛불을 보내고 태극기를 맞음)로 변경했습니다. 보수단체 집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행진’도 등장했죠.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행진’은 우파 최초의 행동전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광화문광장의 텐트촌을 본떠 서울광장에 텐트를 치기도 했죠. 지난달 28일 설날엔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합동차례 및 떡국나눔행사’가 있었는데, 탄기국은 이날 곧바로 “내일(29일) 시청 앞 애국 캠프에서 설날 떡국 1000인분을 준비한다”고 공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보수단체의 미투 전략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3일 탄기국은 “4일 태극기 집회에서 사상 최대의 유모차 부대가 집결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막상 당일엔 달랑 수 대 정도 나오는 데 그쳐 ‘사상 최대’란 말이 무색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촛불집회 초기에 광장에서는 이런 목소리들이 나왔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줬는데 실망이 너무 커서 생전 처음으로 집회에 나왔어요.”(두 아이와 함께 나온 40대 엄마) “저는 박 대통령을 응원하는 사람이었는데 후회를 넘어 배신감을 느끼고 있어요. 이렇게 국민들을 기만할 수 있나.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요.”(아들 내외와 초등학생 손녀와 함께 촛불을 든 60대 여성) “이 헌정문란 사건이 분명 교과서에 실릴 텐데 아이들이 그때 부모님은 어디에 있었냐고 물으면 너희들과 함께 그 현장에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게 해주고 싶어 힘을 보태러 나왔어요.”(두살·네살배기 아들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아내와 함께 나온 30대 아빠) 엄동설한 매서운 삭풍 속에서도 촛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이유가 이분들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집회가 100일 넘게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런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자연스럽게 연대를 이뤘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지만 언제까지나 모방만 해서는 ‘따라쟁이’라는 면박을 면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경영학에서도 어느 정도 모방을 해서 덩치를 키웠으면 ‘품질’을 높이는 차별화 전략을 취해야 산다고 합니다. 보수단체들은 박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하고, 국정농단의 증거가 조작됐으며, 언론이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국민의 뜻을 따른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검찰과 특검의 수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언론 보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입니다. 보수단체의 이러한 주장이 ‘거짓’이 되지 않으려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품질’을 높이지 못한다면, 보수 집회는 미투 전략으로 세력을 다소 확장한 정도에 그칠 뿐 선발주자의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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