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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대여, 민주주의를 의심하라

등록 2017-02-13 10:07수정 2017-02-13 10:12

[1987~2017 광장의 노래]
고등학교 예비 졸업생 820명 조사

촛불광장, 탄핵절차 경험한 10대
적극적 정치 참여 가능성 시사
입시, 취업 등 소수자 배려정책엔
이해관계마다 다른 결과 내놨다

10대 11명, 40대 정치학 박사가
함께 민주주의 2030년을 논했다
먼저 의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일까?”
“다수결은 항상 옳을까?”
“선거에 꼭 참여하겠다”(81.1%), “가급적 하겠다”(15.2%). <한겨레>와 선거연수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6개 지역 고등학교 7곳 졸업 예정자 82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96%에 이르는 절대다수가 ‘선거 참여’ 의지를 드러냈다. 10대들은 ‘직접 정치 행위’에도 높은 참여도를 보였다. ‘집회·시위에 참여’하겠다는 응답(395표)이 ‘선거 관련 글을 인터넷 게시판이나 에스엔에스(SNS) 등에 올리거나 공유한다’는 응답(431표)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 이는 한국종합사회조사 등 기존 사회조사에서 가장 낮은 호응도를 보인 사회 참여 방식이 ‘집회·시위 참가’라는 결과와 상반된다. 누적 참여 인원 1천만명을 돌파한 촛불광장과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을 경험한 10대들. 높은 정치 참여 의지를 가진 10대들의 얘기를 들어보려 지난 6일 이관후(41)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이 광주광역시 오치동 문정여자고등학교를 찾았다. 17~18살 고등학생 11명과 40대 정치학 박사가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 미래’를 논했다.

‘나에게 민주주의는 □다.’ 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광주 문정여고 독서토론동아리 ‘미르나래’ 회원들이 이관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뒷줄 맨 왼쪽)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마친 뒤 민주주의를 한 마디로 표현한 손팻말을 들고 있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나에게 민주주의는 □다.’ 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광주 문정여고 독서토론동아리 ‘미르나래’ 회원들이 이관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뒷줄 맨 왼쪽)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마친 뒤 민주주의를 한 마디로 표현한 손팻말을 들고 있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와 선거연수원이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82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다. “민주주의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를 복수로 골라달라”는 질문에 ‘부패’와 ‘경쟁’이 각각 86, 79표를 얻었다. ‘자유’(616표), ‘평등’(564표), ‘인권’(473표) 등 긍정적·추상적 선택이 많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 완성에 이르기 위한 ‘참여’(300표), ‘정의’(157표)라는 가치는 이보다 낮은 지지를 받았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인가?”

이관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앞서 광주광역시 문정여고 독서토론 동아리 ‘미르나래’ 학생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희망을 보았지만 깊은 절망감도 느끼고 있어요. 아까 어떤 학생이 그랬잖아요, 참담하다고. 핵심적인 부분은 이것일 거예요. 박 대통령의 아버지는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지만 지금 대통령은 선거로 우리가 뽑은 거잖아요, 국민들이. 민주주의 해서 뽑은 것이죠. ‘아, 민주주의는 이런 거야?’ 민주주의에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도 들죠. 민주주의, 좋은 것인가? 이거 계속해야 할까? 어떤 것 같아요?”(이관후)

“그래도 모든 의견을 수렴할 수 있으니까, 간접적으로 뽑는 것보다는 직접 우리 손으로 뽑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학생 ㄱ)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당선) ‘사건’만 봐도요. 사람들이, 생각 없는 사람들이 트럼프 뽑잖아요. 뽑을 때 사람들이 잘 알고 뽑을 수 있게 해야 하고 뽑고 나선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아요.”(학생 ㄴ)

#다수결은 항상 옳을까?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96%일 만큼 높은 정치 참여 의지를 드러낸 촛불 세대, 10대.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소수자 배려 정책을 놓고 이해관계마다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 ‘국가공무원 임용 시 일정 비율 이상 여성 채용 제도’에 대해선, 남자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부정적 반응이 쏟아져 반대표가 20%(164표)에 이르렀다. ‘지역 인재 및 사회배려자 대상의 대학입시 특수전형’에 대해서도 상당한 반대표(120표, 14.6%)가 나왔다. 반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적은 문항에선 찬성이 높았다. ‘저소득층 가구에 지급하는 보조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장학금’에 대해 반대 의사가 각각 19표(2.3%)와 25표(3%)에 불과했다.

“소수 의견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다수결은 항상 선한 결과를 도출하는가?”

두번째 질문을 던졌다. 더 나은 민주주의, 2030년 민주주의 지도는 우리가 익숙하게 여긴 것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이관후 아까 한 학생이 사람들이 잘 알고 뽑을 수 있게 해야 하고 뽑은 다음에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민주주의 두 가지 핵심입니다. 누군지 모르고 선거만 하면 의미가 없는 것이죠. 후보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얻고,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당선자 결정 방식은 어떻게 하며, 단순히 1등만 이기게 할지. 사실 그게 현대 정치 문제의 대부분입니다.

다수결의 문제는 이렇게 어렵습니다. 100명 중의 1명도 소수지만, 100명 중의 49명도 소수입니다. 이 소수 의견은 잘 반영되지 않지요.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라는 원칙이 있는 한 ‘소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는 영원한 딜레마입니다.

학생 ㄹ 예를 들면 과거 나치 같은, 다수 의견이 정의롭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이관후 현대 정치 철학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가장 유명한 방법이 ‘정의’예요, 저스티스(justice). 최근 40, 50년 동안 정치철학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정의론’을 말한 존 롤스입니다. 다수결을 제어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제3의 기준이 정의예요. 법 앞의 평등, 일한 만큼의 대가를 가져가는 것, 장애인이나 소수자 등 약자들에게 더 많은 분배를 줘야 한다든지 복지 혜택을 주다든지. 결과가 공정에서 벗어나면 보완해주는 것이죠. 동양에서는 정의론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학생 ㅁ 예의?

학생 ㅂ덕?

이관후 인의예지 합친 것을 덕이라 하고, 인의 핵심은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연민을 느끼는 것입니다. 공자가 법으로만 다스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도 이것입니다. ‘나는 법만 지키면 된다’는 주의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서양엔 없는 개념입니다.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이런 이야기가 나오죠. 헬조선에서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들이 소수자, 목소리가 약한 사람입니다. 학생들이 사전 질문한 것을 보니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관계’를 설명해 달라고 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질문을 드릴게요. 흙수저, 금수저가 교육에서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학생 ㅅ 많이 심해요. 입시에 있어서도 정보란 게 되게 중요한데 저희 엄마는 기름값이 아까워서 학원까지 데려다주시지 않고 저 혼자 왔다 갔다 하는데요. 엄마가 말씀하시는데, ‘(학원 데려다주는) 엄마들끼리 정보를 나누는 게 입시에 영향을 미치고, 대학까지, 또 그 이후 생활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셨어요.

학생 ㅇ 더 큰 문제는요. 학원 다니는 것은, 그래도 돈을 내고 뭐라도 하는 거잖아요. 아예 돈으로 노력도 않고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금수저’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학생 ㅈ 집이 부자면 유학 갔다 오거나 길이 많잖아요. 저희 같은 학생들은 대학에 못 가면 무조건 국내에서 재수를 해야 하니까요. 유학도 가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우는 애들 보면 부러워요.

#2030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질문과 대답, 다시 질문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계속됐다. 이 연구원이 질문을 던지는 한편 방향을 제시했지만, 사실 정답은 모든 세대가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학생들은 ‘내가 바라는 2030년 민주주의’를 종이에 적었다. 이들은 ‘한반도 통일, 사드 배치, 원전, 테러방지법, 노인복지’ 등 구체적인 사안들이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평등한 사회를 바랐다. 사회 진출을 하기도 전인 10대마저 평등한 사회를 언급한다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불평등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학생 ㄱ 돈의 차이가 인생 차이로 이뤄지지 않는 나라.

학생 ㄴ 수저 색깔로 사람을 나누지 않은 평등한 사회.

문정여고 학생 11명 중 3명은 광주 금남로 등에서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저보다 훨씬 어린 애들, 초등학생이 올라와서 말하는 것 보고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이 애들도 정치에 관심 있는데 우리나라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학생 ㄷ) “데모하듯이 할 줄 알았는데 노랫소리도 엄청 크고. 엄마는 축제 분위기라고 그랬어요. 집회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아직 희망이 있지 않을까?”(학생 ㄹ)

이관후 광장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광장이라는 축제를 즐기고 있지만, 매일매일 축제할 수 없어요. 축제는 정해진 날짜에, 1년 중에 며칠 안 되죠. ‘축제에서 성찰로.’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성찰하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기성세대들이 여러분보다 오히려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런 이야기 잘 안 해요.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인간다움을 위한 정치

1시간20분간 대화가 이어지다 이 연구원은 마지막 20분 동안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강의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30년 되었습니다.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립니다. 잘 안되는 게 당연합니다. 영국은 의회 역사가 800년 정도 됩니다. 프랑스, 미국 민주주의 역사는 200년이 넘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걷다가 넘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똑바로 못 걸어? 그럼 안 되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무릎도 탁탁, 털어주고 내일도 걸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이게 한국의 민주주의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원래 잘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것이죠.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것입니다. 다수결로 죽인 것이죠.

민주주의는 결혼입니다. 연애나 사랑이 아니죠. 우리가 과거에 민주주의를 원했을 때는 ‘보고 싶고,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실제 민주주의는 삶이고, 거기서 이해관계가 부딪치고 싸우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보려 하고 이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죠.

잘 안되는데 왜 해야 하죠? 의문이 생깁니다. 인간은 기계보다 나무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가지를 뻗어 숲을 이룰 때 아름답죠. 만약 가지치기하고 똑같이 만들어놓는다면 좋아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인간답지 않습니다. 인간 본성에 제일 맞는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입니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란 거예요. 인문학의 핵심은 ‘인간다움’이에요. 아름다움, 선, 좋은 것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또 하나는 인터레스트(interest), 즉 이익입니다. ‘내게 도움 되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나 자신은 스스로를 위한 가장 최선의 수호자다.’ 당사자주의 원리라고도 합니다. 대신 착각하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 안에서 모든 것이 반짝거린다, 이 착각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망칩니다. 어떻게 현실을 개선하고,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게 현실을 바꿀 것인가. 여러분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박유리 노현웅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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