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고리 해소 등 경영권 승계 청탁 정황
의혹 제기 뒤에도 최씨 쪽에 우회 지원 확인
박상진 영장은 기각…이재용 ‘몸통’ 분명해져
의혹 제기 뒤에도 최씨 쪽에 우회 지원 확인
박상진 영장은 기각…이재용 ‘몸통’ 분명해져
법원이 한차례 영장이 기각됐던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을 17일 구속한 것은, 이 부회장을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쪽 뇌물거래 의혹의 최종 지시·설계자로 본 박영수 특검팀의 판단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부회장이 청와대로부터 순환출자고리 해소 등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 전반에 대해 도움을 받은 정황(청탁)이 보강 수사를 통해 새로 드러났고, 지난해 9~10월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이 보도된 뒤에도 이 부회장 쪽이 최씨를 우회 지원한 물증(대가) 등이 추가로 확보된 점이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새벽 5시 반께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에 사인하면서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볼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사유를 밝혔다. 앞서 조의연 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19일 이 부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뇌물범죄의 요건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재청구된 영장은 이에 대한 소명이 상당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50여쪽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300여쪽의 의견서를 냈고, 1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 때는 수사 실무를 전담한 한동훈 부장검사가 직접 프레젠테이션까지 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9일 영장 기각 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추가 압수수색하고 사건에 연루된 삼성그룹 임원들을 피의자로 전환해 추가 조사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했다. 이를 통해 특검팀은 재청구한 구속영장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뿐만 아니라 합병 이후 강화된 순환출자고리 해소, 중간금융지주 제도 도입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과정 전반을 박 대통령이 도운 정황을 추가했다.
특검팀은 또 지난 12~13일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과 박상진 사장, 승마협회 부회장인 황성수 전무를 피의자로 조사해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 쪽의 승마 지원 내용을 보강했다. 특히 황 전무의 전자우편에서 지난해 10월 삼성과 최씨가 기존 정씨 승마훈련 지원 계약을 파기하고 비밀리에 제3자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새로운 지원을 약정한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 특검팀은 최씨와의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새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돈을 빼앗긴 피해자라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주려 하거나 최씨와의 관계를 은폐하려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이 새로 확보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과 황 전무의 전자우편 등이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물로 제출됐다.
법원이 이 부회장의 영장은 발부하고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의 영장을 기각한 것은 이번 뇌물혐의 사건의 ‘몸통’이 이 부회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벌 총수가 수사 대상이 되면 주요 임원들이 총수를 보호하기 위해 책임을 떠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을 세 차례나 독대하는 등 본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직접 나선 정황이 분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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