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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컨베이어 벨트처럼 ‘평균’으로 살긴 싫었다

등록 2017-02-24 20:24수정 2017-03-07 10:19

[토요판] 이런, 홀로!?
동거, 5년째
결국 결혼이란 ‘법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서로 주고받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내겐 지금 이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삶이 더 의미 있고 소중하다. 게티이지미뱅크
결국 결혼이란 ‘법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서로 주고받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내겐 지금 이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삶이 더 의미 있고 소중하다. 게티이지미뱅크

▶ 한국의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삽니다. 굳이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 주변엔 결혼적령기(라고 알려진)를 맞았거나 이미 지나버린 젊은이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또한 당신이기도 하고요. 그런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혼자서도 잘 사는 홀로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사연도 기다립니다. fkcool@hani.co.kr로 보내주세요.

어느 모임에서 돌아가며 자신의 ‘흑역사’를 털어놓는 자리가 있었다. 예고된 게 아니라서 남들이 이야기할 때 잽싸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진짜 어두운 흑역사를 말하기에는 아직 그들과 친하지 않았기에 뭔가 무겁지 않은 걸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다 혼자 살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음, 제가…, 혼자 살던 때였는데, 주말이면 부모님과의 안부 전화가 하루 종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시절이었어요. 칼퇴근을 하는 날이나 주말, 휴일에 약속이 없으면 불안했죠. 금요일이나 주말에는 강박적으로 약속을 만들거나 모임에 갔는데 매번 그럴 수는 없으니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못 하고 하루를 보내는 날이 생기더라구요. 어느날은 너무 외로워서 그만…, 옆집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나고 웃음소리가 나길래 나도 모르게 벽에 귀를 대고 그 소리를 들었어요. 웅얼거리는 소리 정도만 겨우 들려서 바짝 벽에다 몸을 밀착하다가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싶어서 펑펑 울어버렸어요. 벽 너머로는 여전히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렸죠.”

가볍다 싶어 꺼낸 이야기였는데 말하다 보니 갑자기 울컥해서 민망해지고 말았다. 다행히 웃으며 자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덕에 모임 분위기까지 망치지는 않았지만, 20대 시절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덜커덕 결혼하기보다

외로워서 옆집 벽에다 귀를 대고 바짝 몸을 붙이고 있는, 어느 주말 오후 30대의 나. 당시의 내 연애는 지배욕 강하고, 상대를 통제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던 전 남친 이후부터 영 별로였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미 짝이 있었고, 어쩌다 나간 소개팅은 그저 상대와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일에 충실하게 만들 뿐이었다.

고만고만한 짧은 연애를 시작하다 끝내기만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반복할 무렵, 고민 상담을 하겠다며 나를 부른 친구를 보러 갔다가 친구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지인과 만나는 자리에서 함께 알게 된 케이스로 연애를 시작하게 될 줄이야. 이미 연애의 지리멸렬함과 외로움 등에 치여 너덜너덜해진 상태라 이번 연애 역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랬기 때문일까? 어쩐 일인지 이번 연애는 나름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 함께 살기 시작했다. 물론 남자친구와 함께 지낸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비록 룸메이트보다야 백배 낫지만 다들 각자의 일과 삶이 있으니 모든 것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혼자인 것처럼 외롭게 보내는 시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동거를 시작할 때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냐고 궁금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의외로 별 내용은 없다. 주변에는 동거를 하면서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서울에서 자취하고 부모님이 지방이나 외국에 거주하는 경우) 왜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것만은 못하겠다는 이해하기 힘든 답이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이 부모님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죄를 짓는 것처럼 들렸다. 부모님 몰래 동거하면서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한바탕 짐을 치우며 난리를 피우기도 싫었고, 무슨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쉬쉬해야 할 일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 20살도 아니고 만 30살이 넘는 성인이 자신의 연인과 함께 산다는 것에 허락을 구하는 일 자체가 아이러니한 것 아닐까. 결혼 적령기로 꼽는 나이를 둘 다 이미 넘어섰고, 진지하게 오래 만나는 사이로 조만간 결혼을 할 예정이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덜커덕 결혼하는 것보다 같이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차근차근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에 부모님도 동의하셨다. 오히려 같이 지내다가 마음이 잘 맞지 않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셨다. 결혼까지 생각하고 같이 살았는데 이제 와서 헤어지면 어쩌나 마음고생하며 조각난 관계를 붙들고 끙끙대지 말라고 하셨다. 혼자 살거나, 동거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내가 행복한 선택을 하면 그것에 대해 늘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겠다는 말씀도 덧붙여.

1년 지나면, 아니 2년 안에는 결혼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유지했다. 서로 결혼에 대해 그렇게 암암리에 합의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어디서 하냐는 둥의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사람들한테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남자친구가 있고 같이 살고 있으며 곧 (1, 2년 안에) 결혼할 거라고 답하면서 뭔가 안도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려놓으니’ 연애는 순조로웠고
부모님께 말하고 동거를 시작했다

다 큰 성인이, 죄짓는 것도 아닌데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하셨다

막연한 합의 조바심이 공존하지만
‘법적 가족'보다 더 중요한 건
오늘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반면 조바심과 불안도 함께 따라다녔다. ‘같이 살고 있는데 조만간 결혼하지 않으면 곤란해. 이 동거는 결혼을 전제로 한 거니까 괜찮아. 그런데 같이 살기만 하고 결혼을 안 하면, 그러면….’ 결혼을 하지 않으면 관계가 ‘완전’해질 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결혼식, 혼인신고 등의 절차와 구속력이 관계를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높은 이혼율을 보면 ‘법적 구속력이 관계를 지켜준다’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 시기를 어떤 기준으로 정하게 된 거지?’ ‘아니, 그 전에 결혼은 왜 하려는 거지?’(이 사람과의 결혼을 떠나 결혼 자체를 왜 하려고 하지?) 막연하게나마 잡아둔 결혼 시기는 내 나이를 고려해 임신과 출산을 염두에 둔 것임을 깨달았다. 물론 결혼하려는 이유가 단지 아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음표가 한가득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흘러 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다행스럽게도 함께하는 사람 역시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결론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엄청나게 높다), 그다음엔 취업 아니면 대학원, 그리고 결혼. 무슨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이 인생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남들 다 하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서, 내가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해서 결정하는 대신 평균에 들어가는 것으로 삶을 꾸려가는 편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법적인 가족이 주는 혜택보다

결혼과 동거의 차이는 뭘까? 동거와 사실혼의 차이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해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둘은 (법적으로) 결혼을 한 게 아니고 사실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둘이서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면 그 둘은 (법적으로) 결혼을 한 부부이다. 결혼, 사실혼, 동거는 각각 법적 차이가 있다.

결국 결혼이란 ‘법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국가와 상대방과) 서로 주고받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남남이던 누군가와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것. 그래서 내겐 지금 이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삶이 더 의미 있고 소중하다. 법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서로에게 부과하는 대상이 내겐 필요하지 않다. 법적인 가족을 확대하고 싶지 않다. 난임 부부 치료 지원, 임대주택 혜택, 연말 정산에 필요한 기본 공제보다 잠이 안 와 뒤척이면 잠들 때까지 목소리를 가다듬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내겐 소중하다. 5년 동안 그렇게 지내왔듯이 앞으로도 오래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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