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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보자보자 하니까…“저출산은 여성 탓” 탁상행정에 폭발하다

등록 2017-03-02 20:06수정 2017-03-02 21:52

[이슈포커스] 보사연 보고서 파문, 왜?

보사연 홈피에 하루 100여개 비판글
원장 사과·연구위원 파면 요구도

행자부 ‘출산지도’ 비난여론 촉발
정부 저출산 대책에 누적된 불만
“단기적 성과 집착해 엉뚱한 대책
결혼·출산 포기하는 현실 짚어야”
익명의 여성들이 결성한 단체 ‘BWAVE’ 회원들이 지난 1월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임 거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행정자치부가 만든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두고 정부가 우량 암소 통계를 내듯 가임여성지도를 만들었다며 비판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익명의 여성들이 결성한 단체 ‘BWAVE’ 회원들이 지난 1월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임 거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행정자치부가 만든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두고 정부가 우량 암소 통계를 내듯 가임여성지도를 만들었다며 비판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저출산을 여성의 고스펙 탓으로 돌린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올초 파문을 일으킨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에 이어, 정부의 탁상행정식 저출산 대책에 대한 불만이 쌓인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면, 원종욱 보사연 선임 연구위원의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 보고서 내용이 보도된 지난달 24일 이후 하루에 많게는 100여개 이상씩 비판글이 폭주하고 있다. 26일 김상호 보사연 원장이 원 연구위원의 보직 사퇴를 알린 데 이어, 27일 원 연구위원도 사과문을 올렸지만 원장의 대국민 사과, 원 연구위원 파면 요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 의견 게시판에 올라온 해당 연구위원의 사과글과 시민들의 항의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 의견 게시판에 올라온 해당 연구위원의 사과글과 시민들의 항의글.
보고서는 여성의 학력·소득수준 상승이 비혼 또는 만혼, 저출산 현상을 심화시킨다며 ‘불필요한 스펙쌓기’를 방지해 결혼연령을 낮추는 한편, 눈높이를 낮춰 하향 결혼도 가능하게 하자는 정책 제안을 담았다. 휴학과 연수, 학위, 자격증, 언어능력 등의 스펙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보사연은 보건복지부와 함께 저출산 대책을 짜는 국책연구기관이고 원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변동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이었다. 문아무개씨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정부가 결혼하고 싶은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을 고학력·고스펙 여성 탓으로 돌리는 것은 치졸하고 일차원적인 대책”이라고 항의했다.

앞서 지난해 말 행자부가 지방자치단체들의 출산율 자율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 아래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숫자를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인터넷에 공개하자 ‘여성이 애낳는 도구냐’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같은 비난 여론과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해당 페이지는 ‘수정작업중’이란 공지만 띄운채 닫혀 있다.

지난 연말 공개됐다가 논란을 겪은 뒤, 현재는 수정 작업 중인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
지난 연말 공개됐다가 논란을 겪은 뒤, 현재는 수정 작업 중인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
이런 일련의 사태엔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탁상행정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조주은 입법조사관(보건복지여성팀)은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안되는 구조적 문제는 간과한채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성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저출산 원인인 것처럼 지적했다”며 “출산 관련 지표가 악화될 때마다 나오는 저출산 대책을 보면, 청년들이 ‘오포세대’로까지 불리는 현실에 대해 정책 당국자들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 예로, 보사연 보고서에는 “바쁜 일상을 대신해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대신해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는 정보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고용 및 주거 불안정과 젠더 불평등 등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2015년 말 확정된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에서도 공공기관·기업체 참여를 유도해 남녀의 ‘건전한 만남 기회’를 활성화한다는 대책(미팅 주선)이 포함됐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정부가 출산율 지표 등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연연해 하면서, 여성을 출산도구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실제 최근 정부가 추진한 출산지도나 저출산 극복 캠페인,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의식개선 사업 등은 오히려 청년세대의 거부감만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행정조직을 동원한 국가 주도의 출산억제 정책을 강력하게 펴온 1970년대 가족계획 사업과 내용만 반대지 발상과 방식은 닮아있다.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사회가 결혼·출산 뒤에도 경력이 단절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신뢰부터 줘야 하는데, 국가가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는 40만6천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고, 합계출산율도 1.17명으로 2년 연속(2014~2015년) 유지해온 1.2명선도 무너졌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부터 해마다 8천명씩 출생아 수를 늘려 2020년 출산율 1.5명을 목표로 공표해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해만해도 난임지원 확대, 신혼부부 결혼비용 세액공제 등 여러차례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책 체감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3차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모든 정부 부처가 저출산 관련 대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공무원들은 무엇부터 해야할지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일부 부처는 일단 예산부터 확보해놓고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하기도 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자녀가 있는 가정의 보육지원 중심 대책에서 결혼 및 출산 자체를 꺼리는 청년세대의 고용 및 주거 안정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도 2015년말에 와서다. 이미 2006년부터 저출산 대책 예산 80조원이 투입된 뒤였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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