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가 3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특검 취재기자단과 오찬간담회를 한 뒤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영수 특별검사가 3일 7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하며 출입 기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김기춘(78·구속)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압수수색 전 집안에 있던 물건들을 아들과 딸 집으로 옮겨놓은 사실 등 수사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박 특검은 이날 오찬에서 “특검팀 수사가 거칠다는 혹평에 대해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김 전 비서실장이 특검팀의 압수수색 실시 이틀 전 아들과 딸 집으로 짐을 빼돌린 일화를 전했다. 박 특검은 “특검팀이 김 전 실장 집에 압수수색 갔을 때 짐을 다 옮겨놨다. 동네 씨씨티브이(CCTV)를 일주일가량 분석해보니 인근에 사는 딸과 아들 집을 드나든 흔적이 나왔다. 김 전 실장 아들이 굉장히 몸이 안 좋다. 고민고민 끝에 압수물을 가지러 갔다. 대신 가족 분들이 마음 상하지 않게 예의를 최대한 갖춰 진행했다”고 말했다.
박 특검은 “나도 인간이고 검사들도 인간이다. 김 전 실장은 5공비리 수사 때 총장으로 모신 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김 전 실장 아들 집을 압수수색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 특검팀이 비인간적인 수사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특검은 김 전 실장이 특검팀에 출석한 날 밤 12시쯤 조사를 다 마친 뒤 김 전 실장 조사실로 찾아가 인사를 전하며 김 전 실장 부인과 아들 병세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박 특검은 검찰 재직 시절부터 이어져온 대기업들과의 악연도 전했다. 그는 “삼성 변호인단이 경제논리를 앞세우면 법이 밀릴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상하게 재계와 사이가 안 좋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 때 에스케이(SK) 처음 수사했고, 그 다음에 대검 중수부장 때 현대자동차, 그 와중에 김우중씨도 구속했다. 이번에 삼성 사건을 담당한 한동훈 부장검사와는 에스케이 때 막내 평검사로, 현대자동차 수사 때는 중수부 연구관으로 데리고 있었다. 이번에 삼성 수사까지 하니 참 인연이 많다”고 말했다.
박 특검은 “국회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고 엄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민들이 보고 있는 청문회 아닌가. 우리 사회가 위증에 대해 관대한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박충근(오른쪽부터), 이규철 특검보와 홍정석 부대변인이 3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특검 취재기자단과 오찬간담회를 한 뒤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최순실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크게 두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박 특검은 “최씨 사건은 두개의 고리가 있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한 것, 둘째, 정경유착이다. 최씨는 우리 사회 정경유착을 활용해 자신의 이권을 챙겼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기업들의 출연 행위를 축소해 보는 시각이 있는데, 최씨의 위세에 눌려 기업들이 돈을 낸 것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몇개 기업 수사를 통해 경종을 울리려는 취지로 접근을 했지, 검찰이 형사사법권한으로 대한민국 경제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했다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혐의를 충분히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특검은 “우 전 수석 관련 해서는 내사 기간이 굉장히 길었다. 범죄사실만 8개를 구속영장에 담았다. 우 전 수석 구속영장은 재청구하면 100% 나올 것으로 보지만, 수사할 시간적 여력이 없었다. 또 특검법이 한정한 수사대상 문제 탓에 가족회사인 정강의 횡령 등 개인 비리 수사는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검찰에서 수사를 잘 할 것으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특검은 최씨에 대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씨가 욕심이 없었다면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더라. 주변에 폭넓게 사람이 있었다면 인사농단이 없었을 거다. 박 대통령과는 너무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사건이다. 최씨가 국민 앞에 서서 ‘죄가 어떻든 자기 불찰로 잘못했다’고 사죄하는 것이 좋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