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년차 변호사인 내가 경험을 통하여 확고하게 정립해둔 직업상 원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판사와는 결코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 초기에는 판사의 태도나 말이 명백히 법에 어긋나면 판사에게 언성을 높이고 주장을 굽히지 않기도 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나의 행동이 내가 대리하는 소송당사자에게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 법원의 현실이 판사들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공정하고 객관적인가는 현저한 의문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의 점과, 법정에서 판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명백하게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판사는 분쟁의 상대가 아니다. 분쟁에서 내 당사자의 정당성을 설득해야 하는 판관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상대로 싸우자고 하는 것은 소송을 지려고 작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최근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재판소의 심리 과정에서 아주 기겁을 한 소식이 있었으니, 재판정에서 대통령 쪽 대리인들이 보여준 모습이 그것이다. 특히 김평우 변호사는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겨냥해서는 “소추위원(국회)의 수석 대리인”이라고 비꼬는가 하면, 이정미 재판관이 이러한 모욕적 언행을 지적하자, “이정미 재판관도 문제가 많다”는 말까지 쏟아냈다. 서석구 변호사는 헌재 대법정에서 태극기를 꺼내 두르려다가 제지를 받기도 하였다.
평균적인 법률가의 입장에서 저런 법정 발언과 태도는 ‘이 재판 져도 좋다’는 각오에 더하여 ‘법률가 사회에서 내가 쓰레기로 매장당해도 무방하다’는 두 가지 결심이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변론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저들은 왜 저럴까? 특히 김평우 변호사는 일찍이 하버드대 유학까지 마친 판사, 변협 회장 출신의 엘리트 법률가가 아니신가? 이런 분들이 저런 막가파식 행태를 하시는 데에는 그만큼의 심오한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가운데, 나로서 그나마 합당한 추론은 이런 거다. 지금 탄핵을 논하는 법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으로서 직무수행 평가와 별개로,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에 대한 직책의 박탈을 논하는 역사적 법정이다. 우리 사법의 역량과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으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이유에서 이 재판이 대의민주주의 원리, 국민주권주의, 권력의 공적 가치에 관한 치열하고 깊이있는 토론에 기반한 수준 높은 재판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 쪽 대리인들 역시 똑같은 생각을 가지셨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막상 소추사실에 관한 대통령의 행적과 처신을 증거로 확인해보니 도저히 수준 높은 변론이 불가할 정도로 처참한 것이 아니었을까?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도, 아이들이 서서히 수장되어 가던 그 시각에 올림머리를 할 생각을 하는 대통령을 어떻게 수준 높게 변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막상 헌재 재판관 중 일부가 기각 심증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에 일급 법률가들로서 탄핵이 기각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본인이 망가지더라도 탄핵만은 인용시켜야 하겠다는 고도의 직업윤리에 기반한 결단을 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을 대리하는 내가 재판관들과 싸우고 모욕을 준다면, 그 어떤 재판관이 기각의 결론을 내리겠는가? 더구나 내가 누구인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판사 출신에 변협 회장을 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망가져준다면 헌재는 확실하게 인용 쪽으로 기울 것이다.‘ 말을 해놓고 보니 나 스스로도 실소가 난다. 이런 차원 높은 생각으로 저런 저질의 변론을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수준도 안 되는 자들이 법률가를 자처하면서 법치가 어떠니 하면서 법치주의를 우롱하고 농락하였다. 박근혜라고 하는 권력의 사유화를 통한 헌법유린, 헌정문란자의 탄생도 바로 이런 수준 미달의 법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 헌재에서 보여준 수준 미달의 변론이 대통령 박근혜의 실상을 폭로하고 급기야는 헌재 재판관들의 염증을 가속화시켜 탄핵 인용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광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