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조금 안 좋으신 것 같아요. 거실이 너무 추워요.” 4년여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맞이한 첫날, 박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80여분만에 나서며 입을 열었다. 조 의원은 이어 “박 전 대통령이 판결 불복에 대해선 특별한 말씀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관저를 떠나면서 발목을 접질린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차분해 보이는 박 전 대통령의 내부상황과 달리 자택 주변은 온종일 어수선했다. 지지자 100여명이 모여들어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주민들과 입씨름을 벌이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경호원과 비서로 보이는 이들은 자택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인근 초등학교 후문과 박 전 대통령 자택이 맞붙어 있는 탓에 이 학교 관계자가 이날 아침 후문으로 오는 아이들을 정문으로 보내달라고 경찰에 요청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또 경찰과 기자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강남경찰서는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경찰을 차로로 밀어 다치게 한 혐의(공무집행) 등으로 ㄱ(67)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또 취재용 사다리 위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를 때리고 이를 말리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폭행) 등으로 ㄴ(65)씨를 연행했다.
이날 아침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지지자 10여명이 “억지탄핵 원천무효”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전날 박 전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파에 섞여 있다 그 자리에 남아 꼬박 밤을 지새웠거나 새벽에 합류한 지지자들이었다. 50~7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많았다. 경기도에서 새벽 5시께 출발했다는 박아무개(70)씨는 “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못 채우고 나온 게 슬퍼서 나왔다”고 말했다. “탄핵 선고 전날에는 비닐 둘러쓰고 헌재 앞에서 노숙했어요. 최순실이 농단한 것이고 대통령은 속은 것뿐이에요. 나는 진실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탄핵당했다고 믿어요.” 큰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작은 태극기를 양손에 하나씩 꼭 쥔 채 박씨가 말했다. 오후에는 친박단체인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 20여명이 박 전 대통령 자택 담벼락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어 “누명 탄핵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며 “헌재의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언론에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색깔론’을 펼쳤다. 6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은 리포트를 하는 한 종합편성채널 기자에게 다가가 “억지탄핵, 원천무효”라는 구호를 외치며 “김정은 부하야? 뭘 촬영해. 하려면 제대로 해라”며 훼방을 놓았다. 70대로 보이는 남성이 경찰에게 자택 앞 건물 옥상에서 취재하는 방송 카메라를 치워달라며 강하게 항의하자, 한 여성은 “건물 주인이 좌파라잖아. 건물주가 오케이 하니까 들어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인터넷 세대인 젊은층에 대한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여성은 “우리 세대는 인터넷을 할 수가 없어. 젊은것들은 잘해서 인터넷에 (주장을) 올리면 1천명, 2천명 퍼지게 하지만 우리는 할 줄 몰라. 그게 한”이라고 말했다. 밤을 새운 탓인지 오후가 되면서 인도에 종이 박스를 깔고 드러눕는 지지자들이 늘었다.
집사 두 명이 교대로 관리했다고는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집인데다, 경호원들이 사용할 물건도 필요한 때문인지 오후 내내 각종 물품을 실은 용달차가 드나들었다. 커튼, 정수기와 물통, 냉장고, 캐비닛, 판자 등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연신 옮겨졌다. 대문을 고치느라 망치로 철문을 때리는 ‘땅땅땅’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경찰은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에 4개 중대(320여명)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김규남 방준호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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