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청와대 사진 기자의 눈에 비친 ‘박근혜 권위주의 의전’

등록 2017-03-22 16:48수정 2017-03-23 10:37

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박근혜 의전 관련 사진전
“박근혜 전 대통령 의전에는 애드리브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일본, 니카라과, 타지키스탄, 벨기에, 요르단, 벨라루스 등 6개국 상주 주한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가진 뒤 국가별로 신임 대사들을 접견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빨간 카펫 속 대통령이 설 위치에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일본, 니카라과, 타지키스탄, 벨기에, 요르단, 벨라루스 등 6개국 상주 주한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가진 뒤 국가별로 신임 대사들을 접견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빨간 카펫 속 대통령이 설 위치에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2016년 4월21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49회 과학의 날’과 ‘제61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념식이다. 행사장을 둘러보며 대통령의 동선에 따른 사진 촬영 구도 등을 살피던 김성룡 <중앙일보> 기자의 눈에 유독 이상한 부분이 발견했다. 행사장 빨간색 카펫 위에 지름이 5㎝ 정도인 형광 반사판이 놓여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설 자리를 미리 표시해둔, 의전용 반사판이었다. 바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기자는 이 반사판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사진 속에 담았다. 그리고 사진을 이전 정부에서 청와대에 출입했던 기자들에게 보여줬다. 한결같이 “이전에는 볼품없는 작은 스티커라 눈에 띄지 않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반사판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크기가 확연히 더 커지고 일반 스티커에서 반짝이는 형광 스티커로 종류도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7월 4일 청와대로 한국자유총연맹 전국 회장단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고 안보와 경제 위기 극복을 당부했다. 사진은 오찬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의 발 사이로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는 장면. 김성룡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7월 4일 청와대로 한국자유총연맹 전국 회장단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고 안보와 경제 위기 극복을 당부했다. 사진은 오찬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의 발 사이로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는 장면. 김성룡 제공
그 뒤로 김 기자는 대통령 공식 행사에 취재하러 갈 때마다 이 반사판부터 찾았다. 유난히도 의전에 관심을 기울였던 정부인만큼, 사소한 부분에서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2016년 1월부터 1년 남짓 청와대에 출입하면서 김 기자는 이런 모습들을 사진에 꼬박 담았다. 다른 기자들은 쉽게 눈길을 주지 않는, 어찌 보면 ‘사소한’ 주제였다. ‘의전’과 ‘권위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진 김 기자의 ‘특이한 점’ 사진 연작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4월 21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제49회 과학의 날’, ‘제61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대통령이 앉을 자리 앞으로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4월 21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제49회 과학의 날’, ‘제61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대통령이 앉을 자리 앞으로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김 기자는 “의전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 중요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 의전에서 권위주의가 두드러져 보인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전은) 굉장히 잘 짜인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동선에 맞춰 철저한 예행연습이 이뤄졌죠. 기자들이 받는 시간표를 보면 행사 계획이 분 단위로 짜여 있는데, 실제로 거의 똑같았어요. 연극 대본과 배우의 연기를 비교해보면, 때로는 애드리브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전에서 애드리브는 없었어요.” 김 기자의 말이다.

주요 20개국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 5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항저우 서호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별 모양’과 ‘원 모양' 스티커가 각각 시진핑 국가주석과 박 전 대통령이 설 자리에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주요 20개국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 5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항저우 서호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별 모양’과 ‘원 모양' 스티커가 각각 시진핑 국가주석과 박 전 대통령이 설 자리에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물론 의전이 한국에만 있는 문화는 아니다. 김 기자는 중국에서 외국 정상들의 의전을 살피고, 일본과 미국 사진 기자들과 대화하면서 각국의 의전 문화를 파악했다. 아베 일본 총리의 의전에는 동선에 따른 반사판이 쓰이지 않는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가끔 스티커 반사판이 쓰인다. 다만 대통령이 짜인 동선대로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반면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보니,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설 자리에 별 모양의 특이한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리에도 빨간색 원형 스티커가 붙었다. 김 기자는 “국가 지도자가 얼마나 권위적인지에 따라 의전 분위기도 다른 것 같다”며 “대한민국은 ‘의전 공화국’이고 그 정점에 청와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릴 적부터 청와대에서 성장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의전’ 문화의 희생자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 전 대통령에게) 의전 없는 삶은 상상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탄핵 정국조차 스스로 결정 못 한 건 아닌지 짐작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4월 8일 충북 청주시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입주기업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을 보면 대통령이 설 자리에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4월 8일 충북 청주시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입주기업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을 보면 대통령이 설 자리에 의전용 반사판이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특이한 점’을 살피는 김 기자의 날카로운 눈에는 그의 삶이 담겨 있다. 중학생 김성룡은 법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는 바람으로 검사와 변호사를 꿈꿨다. 고등학생 김성룡은 사회 정의 수호를 꿈꾸며 경찰대학에 관심을 가졌다. 고교 시절 사진반 활동이 지금의 사진 기자라는 직업으로 연결됐지만, 대학생 김성룡의 시선은 늘 사회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1997년부터 1998년 여름까지 꼬박 1년 동안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가구공단에서 차별과 괄시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기록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는 삼미특수강이 포항제철로 합병될 때 고용 승계가 안 된 노동조합 가입 노동자들의 대량 실직 사태를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그의 시선은 늘 주변부로 향해 있었고, 늘 사회적 문제에 닿아 있었다.

이런 인식은 자연스레 그의 직업관으로 연결됐다. 김 기자가 최근 출판한 사진집 <오답노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올해로 19년째 써 온 ‘오답노트’를 공개하려고 한다. 신문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사진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편타당한 이미지를 오해의 소지 없이, 고른 연령대의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신문 사진에는 분명 ‘정답(사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정답 사진’에는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는다. 신문 1면에 아무리 크게 썼다 한들 ‘내 사진’ 같지 않다. 나의 느낌, 나의 감정, 나의 사고로 만들어진 사진이 아닌, 누군가 세팅해놓은 대로 찍은 사진 같아서다.’

-<오답노트> 작가의 글 중에서-

한국 사회의 중심 권력인 청와대 출입 시절도 김 기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 그리고 직업관과 멀리 있지 않았다. 남들이 잘 살피지 않던 의전 문제에 눈길을 준 이유였다. 김 기자는 청와대에 1년 남짓 출입하면서 남긴 의전 문제에 대한 사진 기록들을 모았고, 제7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부문을 수상했다. 일우재단이 매년 초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진 작업을 선정해 사진 전시와 출판을 지원하는 상이다. 김 기자는 수상 기념으로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에서 오는 4월19일까지 <오답노트 : 특이한 점>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7명의 신임 재외 공관장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2016년 5월 12일, 대통령과 신임 재외 공관장이 설 자리에 각각 ‘특이한’ 모양의 의전용 반사판과 ‘평범한’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7명의 신임 재외 공관장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2016년 5월 12일, 대통령과 신임 재외 공관장이 설 자리에 각각 ‘특이한’ 모양의 의전용 반사판과 ‘평범한’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김성룡 제공
사진집 <오답노트>에는 ‘특이한 점’, ‘눈 감은 유명인 인상 사진’, ‘연출된 뉴스 사진’, ‘신문서 쓰지 않는 결정적이지 않은 순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 기자는 <오답노트>를 두고 “‘의전’을 반영한 ‘특이한 점’ 사진 연작은 <오답노트> 작업의 일부분이다. 작가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사진가와 사진기자 사이에서 오래 방황했다. 정형화된 보도사진이 현장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정답이 아닌 오답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수진 일우사진상 감독은 “기자들은 일반적으로 뉴스가 발생하면 소속 언론사와 결을 같이 해 보도한다. 하지만 김성룡 기자는 뉴스 관련 사진 기사뿐만 아니라 질문을 담아 폭넓은 관점에서도 기록을 해왔다”고 말했다. 일우사진상 심사위원이자 독일의 세계적인 예술 전문 출판사 <핫제칸츠>(Hatje Cantz)의 국제 프로그램 감독인 나딘 바쓰도 “기자의 진술로서 확장성이 커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36년 봉사에 고발·가압류?…지자체 무책임에 분노” 1.

“36년 봉사에 고발·가압류?…지자체 무책임에 분노”

땅 꺼지고 주택도 잠겼다…폭우에 전국 900여명 대피 2.

땅 꺼지고 주택도 잠겼다…폭우에 전국 900여명 대피

[현장] “성착취물 떠도는 것 알고 자퇴 고민…꼭 살아 있어 달라” 3.

[현장] “성착취물 떠도는 것 알고 자퇴 고민…꼭 살아 있어 달라”

“윤 정권, 남은 임기 죽음처럼 길어”…원로 시국선언 4.

“윤 정권, 남은 임기 죽음처럼 길어”…원로 시국선언

‘지진 피해’ 일본 이시카와현도 기록적 폭우…1명 사망 3명 실종 5.

‘지진 피해’ 일본 이시카와현도 기록적 폭우…1명 사망 3명 실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