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포럼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연 ‘보건의료산업 일자리 대타협을 제안한다’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임상간호사 수는 4.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3명)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0.3개로 오이시디 평균(4.8개)보다 갑절 이상 많다. 인구 100만명당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도 오이시디 평균(14대)보다 9.5대 많은 23.5대나 된다.(오이시디 2014년 보건의료 데이터) 사람보다는 장비와 시설에 투자하는 한국 보건의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사정 대타협을 제안하고 나섰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해 의료서비스의 질과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포럼은 지난 1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보건의료산업 일자리 대타협을 제안한다’를 주제로 19대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었다. 공동포럼은 전국보건의료노조와 보건의료산업 사용자단체협의회(준)가 꾸린 노사 공동 정책협의체다. 이날 토론회에 정의당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직접 나와 공약을 발표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선 후보 캠프의 정책 담당자가 참석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불참했다.
토론회에서 정책 제안을 한 전문가들과 대선 후보 쪽은 모두 보건의료 분야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보건의료 인력이 부족하면 환자 대면 시간이 줄어들어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사고에 노출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자리 창출 규모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새 정부의 정책과제 제안’에서 50만개의 보건의료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인 인력 수요로는 △2020년까지 모든 병동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실시(11만5325명)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제고를 위한 보건의료인력법 제정(11만8416명) △보건소 등 공공보건의료인력 확충(10만3000명) △시·군·구 한 곳당 공공병원 1개씩 설립(6만9660명) 등을 꼽았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17조5000억원 추산)은 건강보험 수가 조정, 보건의료 예산 확충, 건강증진기금 활용 등을 통해 마련하자고 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보건의료 노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나 실장은 “우리나라의 보건복지 일자리 비중은 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향후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취업자 중 보건의료 분야 비중은 3.7%로 독일(11.7%), 일본(8.9%), 미국(7.7%)과 견줘 훨씬 낮다.
반면 이날 보건의료 전문가 정책 제안을 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2020년까지 보건의료 분야 일자리 12만개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체 병원 70% ‘보호자 없는 병원’(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에 5만명, 만성질환자 관리 전담 간호사 5만명 등이다. 김 교수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8조3천억원으로 추산하고, 건강보험 누적 흑자분(20조원)을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사용자 쪽 정책 제안자로 나온 임영진 경희대 의료원장(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은 “지금 의료계는 인력난이 확대돼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의료 영역은 고용인력 규모가 서비스의 질을 좌우하는 노동집약적 분야로 일자리 창출이 높은 산업인 만큼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보건의료산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대선 캠프 관계자들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제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인 정춘숙 의원은 “보건의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업무 특성상 인력집약 산업이고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성이 필요한데도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 인력 인프라 구축과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제정해 보건의료 인력 관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의 일자리 공약에는 ‘보육·의료·요양 등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34만개 창출’이 포함돼 있다.
대선 후보로는 유일하게 토론회에 참석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의료는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면 인력 충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자리 창출의 최적지가 바로 의료 분야”라며 “적어도 오이시디 평균 수준의 건강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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