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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군대 내 동성애에 “우웩”…정말 의도가 없었을까?

등록 2017-04-22 11:31수정 2017-04-22 12:19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혐오 조장하는 국가기간방송 KBS
지난 4월13일, 군대 내 인권정책과 제도, 법률, 관행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 군인권센터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육군이 군대 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표적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날 육군은 반박자료를 냈다. 반박자료는 올해 초 현역 병사 1명과 간부 1명이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음란물 유포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군형법 92조 6항 추행죄를 어긴 군인들을 조사하게 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반박자료에는 구체적인 맥락이 생략되어 있었다. 현재 수사 대상이 된 40~50명의 현역 군인들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음란물 유포 사건과는 무관하다. 군은 해당 사건의 피의자에게 “다른 동성애자 군인들의 신상을 밝히라”고 강압적인 자백을 요구했고, 그렇게 해서 알아낸 동성애자 군인에게 찾아가 다시 “다 알고 왔으니 알고 있는 다른 동성애자 군인의 신상을 밝히라”고 요구하기를 반복해 이 명단을 완성했다. 이런 디테일을 지운 채 애매한 표현들로 일관하자, 반박자료 속 사건은 마치 수사 대상자 전원이 단체로 난잡한 성관계를 가졌다거나, 전원이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는 데 가담한 것처럼 그 맥락이 왜곡됐다.

#포르노 영화 찍냐?

동성 간의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군형법 92조 6항 추행죄는 끊임없이 위헌소송의 대상이 되는 인권침해적인 법률이다. 해서 상호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에까지 이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계속 진행중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군의 수사가 명백한 표적수사이자 불법수사라는 점은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자료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군검찰은 강압적인 자백 강요와 폭언, 반강제적인 통신기기 포렌식, 게이 데이팅 앱을 이용한 함정수사 등을 통해 동성애자 군인을 식별하기 바빴고, 변호사를 선임해 조사에 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군인을 특별한 이유 없이 체포했다.

그렇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이런 사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한국방송공사(KBS)가 생각한 답안이 무엇인지는 4월13일 밤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케이비에스가 자사의 뉴스 콘텐츠를 유통하는 창구 중 하나인 페이스북 ‘KBS 뉴스’ 페이지는 육군의 반박자료를 고스란히 답습한 뉴스 리포트를 게재했다. 군인권센터 측의 입장이 생략되는 동안, 뉴스는 수사가 “인권과 개인정보를 보호한 가운데 적법하게 진행” 중이며 “육군은 앞으로도 동성 간 성관계 등 군 기강 문란행위에 대해 법과 규정에 의거, 엄중하게 처리해 나갈 방침”이라는 관계자의 코멘트까지 소개했다.

일방적인 보도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부적절한데, ‘KBS 뉴스’ 페이지 관리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관리자는 뉴스 클립을 올리며 게시물에 “포르노 영화 찍냐? #언제 #어디서든 #성관계 #동성”이라고 적었다. 수사 대상자 전원은 졸지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잡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몰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게시물 아래 댓글난에 네티즌들의 동성애 혐오 발언들이 달리자, 관리자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동조의 답글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직업군인이 많다는 점이 참” “(행복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 세상이… 좀 더 행복한 뉴스를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이해가 안 갑니다. 어리둥절” 압권은 이 한마디였다. “우웩.”

’KBS 뉴스’ 페이스북 페이지
군인 동성애자 표적수사 지적한
군인권센터 기자회견 보도하며
성소수자 혐오 표현 남발

사과문은 “특정 의도 없었다”지만
인권침해 논란 다루지 않은 채
육군의 일방적 주장만 인용 보도
“조직적·구조적인 윤리의 실패”

일국의 국가 기간방송사 뉴스를 전달하는 공식 페이지가, 육군의 입장을 고스란히 답습한 것도 모자라 앞장서서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고 부추긴 것이다. “우웩.” 별도의 채용 과정을 거친 페이지 관리자를 기자로 보긴 어렵겠지만, 케이비에스 뉴스를 유통하는 케이비에스의 공식 페이지에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9조 “우리는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계층·종교·성·집단 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는 공영방송이 저지른 믿을 수 없을 만큼 저열한 사건. 이를 목격한 수많은 네티즌들은 분노했고, 거센 비판을 맞은 ‘KBS 뉴스’ 페이지는 해당 게시물의 내용을 수정하고 혐오발언을 지운 뒤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에서 케이비에스는 페이지 관리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약속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사과문에선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조직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과문은 해당 담당자에게 엄중히 주의를 주고 경고하겠다고 말했지만, 담당자 한 사람을 넘어 조직 전체가 책임을 나눠 질 의사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나기 13일 전인 3월31일로 시계를 돌려보자. 언론사 지망생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채용 정보가 올라왔다. 케이비에스 보도본부 디지털뉴스팀에서 뉴스콘텐츠 소셜네트워크 유통 담당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공고였다. 대학 휴학생 및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이 직무의 근무 조건은 2교대 근무, 급여는 월 180만원(세전)이었다. 4월7일에는 같은 커뮤니티에 채용이 완료되었다는 공고가 떴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문제의 페이스북 혐오발언 사건이 터졌다.

4월7일 뽑힌 직원이 4월13일에 일을 저지른 것이라 가정해 보자. 언론은 모든 국민을 편견 없이 존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나아가 모든 구성원들이 그러한 윤리를 공유하며 업무에 임하는 것을 확실히 해 둬야 하는 책임이 있다. 채용 공고에서 사건까지 2주. 케이비에스는 해당 직원을 채용할 때 언론사의 일원으로서 기초 소양을 갖췄는지 검증해야 할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물론 채용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채용 과정에서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랬다 하더라도, 자사의 직원이 공공연하게 특정 성향이나 계층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지 않도록 직업윤리를 교육해야 할 의무까지 저버린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채용이 결정된 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업무에 투입됐다면, 그건 해당 직원이 업무에 필요한 윤리와 가치관을 교육받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가 4월7일에 채용된 사람이 아니라 전부터 근무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더 큰 문제다. 교육과 검증의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언론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해당 직원 한 명이 경고를 받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케이비에스가 인재를 채용하고 교육하는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의 잘못일까?

케이비에스는 같은 사과문에서 “논란이 된 글은 특정한 의도를 갖고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이미 뉴스 리포트에서부터 케이비에스 뉴스는 육군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반영해 보도했을 뿐, 군인권센터를 비롯해 이 사건을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시선은 보도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의 취재 및 보도활동에 있어서 취재원에 대해 형평과 공정성을 유지”하라는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실천요강 2조 2항을 심각하게 위반한 태도였다. 이는 더 이상 페이스북 ‘KBS 뉴스’ 페이지 관리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케이비에스라는 조직 전체가 나눠 져야 할 책임이다. 뉴스의 유통과정에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보도 자체부터 명확한 지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책 또한 조직 전체 차원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케이비에스는 이미 보도 태도에서부터 혐오를 조장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그 책임은 1일 2교대, 세전 180만원을 받는 직원 한 명에게 돌렸다. 회사는 어떠한 특정한 의도도 없었다는 말과 함께.

시민사회는 지난겨울 내내 조직적이고 구조적으로 벌어진 불의를 한두 명 개인의 잘못으로 축소하려는 시도에 맞서 광장에서 싸웠다. 조직 차원에서 일어난 윤리의 실패를 가장 두드러진 개인 한 명의 잘못으로 축소하려는 시도가 반복되는 걸, 우린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적폐는 정치의 영역에만 있는 게 아니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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