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에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굳이 비유하자면, 대통령선거는 ‘서바이벌 오디션’에 가깝다. 치열한 예선과 본선이 끝나면 1등만 살아남는다. 정책과 비전도 1등 것만 유효하다. 국가 운영의 큰 그림을 놓고 승부를 펼쳤던 나머지 경쟁자들의 공약은 사장된다.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정책일지라도 ‘패자 부활’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대선 직후 낸 논평에서 밝혔듯이, “상대 진영의 합리적인 정책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열린 리더십과 통합의 정치”가 필요한 때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한겨레>가 대선 기간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기 위해 진행한 ‘시민 정책 오디션’ 참가자들한테서 ‘버리기엔 아까운 낙선자 공약’을 추천받았다. 일종의 ‘정책 패자 부활전’인 셈이다. 41명의 시민 패널 가운데 27명이 51건(복수 응답)을 추천했다. 이 가운데 3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공약은 슈퍼우먼방지법(심상정 정의당 후보), 육아휴직 기간 3년으로 연장(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기본소득(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 등이다.
심상정 후보의 ‘1호 공약’이었던 슈퍼우먼방지법은 출산 전후 휴가 확대(90일→120일), 육아휴직 기간 확대(12개월→16개월), 엄마·아빠 육아휴직 3개월 의무할당제(파파쿼터제) 등을 뼈대로 한다. 이 공약을 추천한 문준희(24)씨는 “저출산과 노동, 여성인권 등 다방면에서 효과적이면서도 가장 빠르게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박선언(41)씨는 “아빠가 온전히 육아를 감당하는 경험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 강제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을 것이므로 의무할당이 필요하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성의 육아휴직을 촉진하기 위해 아빠가 육아휴직을 할 경우 6개월간 소득의 80%(최대 200만원)를 지급하는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를 1순위 공약으로 내세웠던 유승민 후보의 ‘육아휴직 3년법’ 공약은 민간 기업에서도 육아휴직을 3년간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 교사와 공무원은 최장 3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이 공약은 육아휴직 대상 자녀 나이를 만 18살(현행 만 8살)로 높이고 횟수도 3회에 걸쳐 나눠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렇게 해야 ‘성장 단계별 돌봄’이 가능해진다는 게 유 후보 쪽의 설명이다. 시민 패널인 김효연(41)씨는 “육아휴직을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나눠 쓸 수 있도록 법제화한다면 유아기뿐 아니라 부모의 손길이 정말 많이 필요한 취학 시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이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이다. 유아(0∼5살)·아동(6∼11살)·청소년(12∼17살)·청년(18∼29살)·노인(65살 이상)에게 생애주기별로 연간 100만원씩의 기본소득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국내 최초인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 시행 경험에서 비롯된 공약이다. 이 공약을 추천한 조명진(62)씨는 “연간 100만원씩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국가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의 ‘상가 임대차 계약갱신요구권 10년으로 연장’(현행 5년), ‘임대료상한제 도입’(임대료 인상률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 이내로 제한), ‘청년사회상속제’(20살이 되는 모든 청년에게 1천만원씩 배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청년주거수당’(저소득층 청년에게 월 10만원씩 5년간 지급), 이재명 후보의 ‘노동경찰제’(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실질수사권 강화) 등의 공약도 복수 패널의 추천을 받았다.
‘청년사회상속제’를 추천한 이은주(25)씨는 “부의 불평등에 따른 사회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청년들이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공약”이라며 “다만, 이 공약을 실현하려면 재원 조달의 문제가 있으므로 현실적인 수준에 맞게 사회상속 액수를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주거수당 공약을 추천한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현재 주거대책에는 사각지대가 많은데 주거수당은 이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거 불안 해결을 위해 가장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임 위원장은 “촛불 시위에서 터져나온 시민들의 요구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게 진정한 사회 통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촛불 정신을 받들겠다고 밝혔던 만큼, 다른 후보들이 내세웠던 공약이라도 국민들의 일상을 바꿔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조창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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