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성낙인 서울대 총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성낙인 서울대 총장이 벨라루스 국적으로 러시아어로 글을 쓰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대담을 하면서 ‘노어노문학과 나온 딸이 로스쿨 갔다’ ‘작가가 소련 사람인 줄 알았다’ 같은 내용으로 축사를 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알렉시예비치는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이전부터 반체제 성향의 글을 써왔고, 강제수용과 민족분쟁 등 공산주의 시대 러시아의 그늘을 줄곧 비판적으로 기록해온 기자 출신 작가다. 지난 1월에는 세계 문학인 단체인 국제펜클럽 러시아 지부인 ‘러시아 펜센터’를 탈퇴했다.
서울대 러시아연구소가 주최하고 대산문화재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와의 대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전쟁, 평화 그리고 인간’ 대담회가 지난 22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과 학교 쪽 설명을 종합하면, 성 총장은 축사에서 ‘딸이 노어노문학을 전공해서 자신이 노문과 학부형이며, 딸은 로스쿨에 갔다’ ‘작가가 소련 사람인 줄 알았다’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에 많이 왔는데 여자는 처음이다’라는 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 결과 참석자들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초청한 자리에서, 노문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준비하고 문학 연구자들이 모인 강연장에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로스쿨 운운이었다. 천박하고 무례한 인사말이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해서 훌륭한 지성인으로 성장했다’는 형식적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인사말조차 할 수 없는가” “노어노문학과 행사로 진행된 자리에 와서 자기 딸이 노어노문학과 다녔는데 로스쿨 가서 변호사 시험을 친다는 둥 얘기를 했다. 대학이 소위 비인기 학과로 모는 인문대 교수들이 눈앞에 앉아 있는 데서”라며 성 총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또 “왜 굳이 소련이란 말을 쓴 것인지 의아하다. 성 총장이 외국 대학에 강연을 갔다고 생각해 보라. 그 대학 총장이 ‘중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국 사람이더라’라고 한다면 무례 아닌가. 통역돼서 작가한테 전달됐을 생각 하니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이 대담회에선 러시아어와 한국어 동시통역이 제공됐고, 예상 인원 100명을 넘은 17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대 러시아연구소 관계자는 2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성 총장은 대담회가 시작되기 전 알렉시예비치 작가와 30분 정도 차를 마시며 편하게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축사는 이런 분위기에서 친근하게 말씀하신 차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총장께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어노문학을 전공한 자녀 이야기도 하시며 축사를 하셨는데, 익숙하지 않은 분야이다 보니 의도와 다르게 오해를 일으킨 것 같다. 언짢으셨던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석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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