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헌 철폐, 독재 타도, 민주헌법 쟁취’를 외쳤던 6·10 민주항쟁 30돌을 기념하기 위해 10일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특히 올해에는 6월항쟁의 중심이었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이 열리고 시민사회단체가 10년 만에 정부 공식 행사에 참여하기로 해 더욱 뜻깊은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쪽은 기대하고 있다.
이번 ‘6·10 민주항쟁 기념식’의 주제는 ‘기억’과 ‘다짐’이다. 1987년 6월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고 앞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다짐한다는 목표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행사들이 공식 기념식 전후로 다채롭게 열린다.
특히 10일 오후 2시부터 서울 곳곳에서는 ‘민주시민 대동제-6·10 난장’ 플래시몹이 진행된다. 시민 참가자들은 각각 동학농민군, 삼일만세군, 사월혁명군, 오월 광주시민군, 유월항쟁군, 탄핵 촛불시민군의 여섯 그룹으로 나뉘어 시민항쟁을 상징하는 여러 장소에서 출발해 서울광장 쪽으로 행진해 온다.
동학농민군은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민주 민생 평화,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노동자 농민 생존권 보장’과 같은 구호를 적은 만장기를 들고 행진하며, 삼일만세군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위안부 합의 무효, 평화통일 이룩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한다. 사월혁명군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출발하고, 오월 광주시민군은 서울역에서 출발해 “민주주의 수호” 등의 구호를 외칠 예정이다. 유월항쟁군은 머리띠를 맨 학생과 노동자 작업복 등의 복장을 한 채 “호헌철폐 독재타도, 최저임금 1만원 쟁취” 등의 구호를 외친다.
가장 최근의 시민 저항을 상징하는 탄핵 촛불시민군은 청와대 인근인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출발해 “세월호 진실 인양, 재벌개혁·언론개혁·검찰개혁” 등 현재 진행중인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을 구호로 외칠 예정이다. 또 미군 장갑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효순·미선 양을 추모하는 구호도 함께 외친다. 주최 쪽은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모든 행진 대열에서 ‘세월호 진실 인양’의 구호를 외치며 과거 상징적인 시민 저항들이 현재의 역사와 민주주의 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기념식 중간에는 6월항쟁을 상징하는 민중가요인 ‘광야에서’가 제창될 예정이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원곡 가수인 윤선애씨와 함께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순서도 마련했다. 그동안 박종철·이한열 열사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황보영국·이태춘 열사를 기리는 자리도 따로 마련된다. 청년·고등학생 등이 함께 1987년 6월항쟁과 이번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논의하는 순서도 준비했다.
이날 서울광장 기념식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6월항쟁계승사업회, 사월혁명회, 여성단체, 노동단체 등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대거 참여한다. 또 일반 시민과 학생을 포함해 모두 50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념식은 서울시청 앞 광장 외에 부산과 광주, 성남, 원주, 목포, 대구, 안산 등 전국 곳곳에서도 열린다. 6월 민주항쟁 30주년 광주전남행사위원회는 10일 오후 6시 광주광역시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기념식을 연다. 이날 행사는 80년 5월 광주와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이 한 갈래 물줄기로 이어지는 역사라는 점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닌다. 6·10항쟁 30돌을 기념하는 표지석도 10일 대구, 경남 창원, 전남 목포 등 곳곳에 들어선다. 6·10 항쟁은 2007년 5월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허재현 김규원 기자
catalunia@hani.co.kr
우리가 몰랐던 6월의 열사, 황보영국·이태춘 누구?
10일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서울시청 앞 광장 한켠에는 박종철·이한열 열사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이태춘·황보영국 열사를 기리는 자리가 따로 마련된다.
이태춘 열사는 1987년 6월 부산에서 경찰의 시위 진압 중 고가도로 아래로 떨어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7살 젊은 나이로 숨을 거뒀다. 태광고무에서 사무직 노동자로 근무하던 그는 6월 항쟁이 시작되자 퇴근 뒤 매일같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경찰은 이태춘 열사의 사인을 단순 추락사로 발표하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8년이 돼서야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됐다.
황보영국(당시 26) 열사는 1987년 5월17일 당시 5·18 6주기를 맞아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가 옛 부산상고 앞(현재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인근 도로에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도로를 따라 달리다 몸에 불을 붙였다.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황보영국 열사는 거리를 달리며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성지고를 중퇴하고 삼화고무와 태화고무에서 일했으며 1987년 2월7일 박종철 열사 시민추모제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돼 영도경찰서와 남부경찰서에서 3일간 구류됐다.
두 열사 모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출범한 뒤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부산 민주공원에 각각을 위한 추모비와 추모석이 세워져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