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374명의 청구인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위헌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어 법원에도 국정화 고시 취소소송 및 효력정지신청, 위헌제청신청을 했다. 전 국민적 관심사인 이 사건을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지난 5월 국정화 고시를 폐기하면서 행정소송은 취하됐고, 헌법소원은 기일도 열리지 않았다. 3374명의 국민은 사법부로부터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국정화 시도가 강행된 1년6개월 동안 낭비된 혈세와 교육현장의 혼란, 국민적 분노를 돈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사회 혼란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법부는 ‘적시에’ 답을 했어야 했다.
왜 사법부는 끝내 국정화에 대한 판단에 소극적이었을까. 정부가 힘주어 추진하는 사업에 제동을 거는 게 어려웠을까? 혹시 정부의 외압이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그 내막을 알 수 없다. 사법부가 정치·사회적 사안에 항상 적극적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의가 분분하다. 하지만 정치·사회적 논의체계가 해결책을 찾지 못할 때 사법부는 자신의 역할을 피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예전 칼럼에 군 영창의 문제를 썼다. 그때 언급했던 군 영창 사건 선고가 최근에 있었다. 법원은 1심 진행 중에 원고가 제대했다는 이유로 군 영창 처분이 위법한지 본안판단 자체를 하지 않은 채 ‘각하’를 했고, 위헌제청신청 역시 각하했다. 항소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런 방식으로는 군 영창의 위헌·위법성을 사법부에서 진지하게 판단받는 것이 앞으로도 어렵다. 군의 속성상 군 영창에 대해 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사병은 누구나 곧 제대를 앞두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법원은 당사자가 제대하기 전에 신속하게 사건을 진행해 법적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상황의 긴박성을 외면한 채 제대를 이유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법원이 임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사법부가 사회 공동체가 요구하는 사명을 회피하지 않고 촌음을 아껴 정면으로 사안을 대면했던 사례들, 그리고 그 때문에 찬사를 받은 사례도 많다. 2016년 국정농단 촛불집회 당시 경찰은 토요일 광화문광장 집회에 대한 금지통고를 하루 전에야 기습적으로 통보하는 일을 반복했다. 집회를 계획대로 하려면 하루 안에 집회금지 통고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야만 했다.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이때 법원은 토요일에 심문기일을 잡아 몇 시간 내에 결정을 내려줬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집회를 열 수 있었다. 박근혜 탄핵심판 사건도 그렇다. 헌재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쪽의 집요한 재판 방해와 지연 시도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판단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지켜냈다. 헌재가 출범 이래 어느 때보다 국민적 지지를 많이 받았을 때가 바로 그 시기이다. 법원과 헌재는 이런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소송 상담을 해보면 의뢰인이 반드시 물어오는 게 소송의 기간이다.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변호사도 모른다. 구속 피고인의 형사재판은 구속 기간 때문에 6개월 안에 1심이 끝난다. 그 밖의 소송은 통상 1심 기준 6개월에서 1년이 걸리고 3심까지 2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더 걸리는 경우도 많다. 소송을 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이다. 소송 기간에는 머릿속에 소송 생각이 꽉 차 있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받는다. 법원은 마땅히 사건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지만, 너무 더딘 재판은 소송 당사자를 큰 고통에 빠트린다는 점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무엇’을 말하느냐 못지않게 ‘언제’ 말하는가도 중요하다.
송상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