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극장에 갔다. 지난주까지 스크린을 ‘싹쓸이’하고 있던 영화 <군함도>가 눈에 띄게 줄고, 얼마 전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지난 주말을 기준으로 전체 극장 스크린 2500여개 중 <택시운전사>는 1800여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일단 극장에 가서 시간이 맞는 영화를 고르는 나 같은 보통 관객에게, <택시운전사>가 아닌 다른 영화를 선택할 자유 같은 건 없었다.
영화계 대목이라는 여름이면 이른바 스크린 몰아주기 논란이 되풀이된다. 그 중심에는 우리 영화산업 내에서 사실상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자기 계열회사가 배급하는 영화에 많은 스크린을 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다른 배급사들을 차별하거나 멀티플렉스 극장의 경제 논리에 의해 소비자의 영화선택권이 침해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씨지브이(CGV)와 배급사 씨제이이앤엠(CJ E&M)은 같은 씨제이의 계열회사이고, 롯데시네마와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함께 롯데쇼핑주식회사에 속해 있다. 영화 <군함도>가 2천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배급사가 씨제이이앤엠이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그때마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흥행이 잘될 영화라고 판단했을 뿐’, ‘관객들의 예매가 많았기 때문’ 등의 논리로 대응해왔다.
우리 영화산업에서 멀티플렉스 극장은, 제작사와 배급사를 압도할 만한 위치에 있다. 씨지브이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상위 3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전체 스크린의 92%를 가지고 있다 보니, 제작사나 배급사는 ‘찍히지 않기 위해’ 불리한 계약서에도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다. 눈치 없이 불공정한 계약에 문제제기를 하다 애써 만든 영화를 개봉도 못 해보고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극장 안팎에서는 힘의 우위를 앞세운 불공정거래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져왔다. 일례로 몇 해 전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상영 설비를 필름 영사기에서 디지털로 교체할 때 이 비용의 70%를 배급사들이 떠안게 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계약이라는 외양을 갖추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몇 해 전 이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씨지브이와 롯데시네마가 계열회사에 스크린을 몰아주고 상영기간을 연장해주는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했다며 수십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씨지브이와 롯데는 이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3월 대법원 판결은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렸다. 법원은 스크린 독과점 등이 일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계열사가 아닌 배급사에 대한) 차별행위가 현저하다고 보기 어렵다”, “계열회사를 유리하게 할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와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극장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결국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은 취소되었다. 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씨지브이의 대표는 “스크린 독과점은 과거의 어젠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에 이르렀다.
공정위나 법원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사후적 규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이제는 영화계의 불공정한 거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이 긴절해 보인다. 이미 국회에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있다. 대기업이 배급과 상영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하거나, 멀티플렉스에서 특정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 쿼터제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이 눈에 띈다. 한꺼번에 바꾸기 어렵다면 당장 가능한 몇 가지라도 먼저 도입하면 된다. 다행히 새 정부 역시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극장에서 영화를 골라 볼 자유를 달라.
정민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