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건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하나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소송이었다. 지난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후보자는 후보자대로,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깜깜이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여러 지역에서 생겼다. 참여연대는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구 획정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유권자로서 알 권리가 있다”며 30차례 이루어진 회의록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회의록이 공개되면 업무수행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며 이를 거부했으나, 이에 대해 지난 9월1일 서울행정법원은 ‘선거구 획정을 위한 회의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진행됐는지는 국민의 입장에서 중요한 공적 관심사’라며 위원들의 실명을 제외한 나머지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또 하나는 2016년 2월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라며 이른바 테러방지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한 사건에 관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이었다. 참여연대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당시 테러방지법 처리가 지연되는 상태를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한 근거자료를 공개하라”고 청구했고, 국회는 “(국회의장에게 보고된) 보고서가 공개되면 국회의장에게 보고할 문서를 작성하는 데 심리적 부담이 생겨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예상된다”며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이러한 정도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공개될지 모른다는 심리적 부담 때문에 내부 보고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해당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지금 법원에서 공개 여부를 다투고 있는 이 사건들은 모두 2015년~2016년 초에 있었던 일들이다. 소송이 1년 반 이상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많이 잊힌 사건들이다. 국회와 선관위가 이번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면 회의록과 보고서가 공개되는 시점은 몇 년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그때 가서 이 자료들이 공개되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 적어질 것이고, 공개된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진다. 그렇다 보니 행정기관의 입장에서는 정보공개 소송이 제기되면, 공개할 만한 사건이라도 일단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것이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행정기관이 정보공개 소송에서 시간끌기 전략으로 대응해왔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들의 당사자들(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 사무총장) 역시 비슷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정보공개에 대한 공무원의 재량이 지나치게 작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으로서는 자칫 정보를 공개했다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일단 비공개한 뒤 법원으로 판단을 떠넘기고,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항소심, 대법원으로 사건을 넘겨 자신의 책임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공개가 원칙”이라는 정보공개법의 기본 원칙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비공개가 원칙인 것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다. 공무원이 재량껏 판단해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일지 결정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근거 규정을 정보공개법에 새로 넣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보공개에 관한 공무원의 재량이 보장된다면 지금과 같은 기계적 항소, 상고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공개되지 않으면 다음 총선을 앞두고도 같은 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 과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이 적절히 행사되었는지 따져볼 수 있어야,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이전보다 나은 판단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간 이룬 성과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정보공개 청구를 ‘성가시고 귀찮은 민원제기’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보공개 하나 받아내기 위해 법원을 무수히 들락거려야 하는 수고, 이제 좀 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민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