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주인 행세 하는 기형적 구조로 편파방송을 주도한다.”
국가정보원이 2010년 3월 김재철 사장 취임에 맞춰 작성한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런 인식을 근거로 국정원은 ‘노영방송’ 잔재 청산, 인적쇄신, 편파 프로그램 퇴출 등을 <문화방송>(MBC) 장악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문건의 문화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치밀하고 구체적이었다. 노조위원장 교체를 기획하고 노조의 자판기 운영권 박탈을 지시하는 등 깨알 같은 반노조 대책을 주문했다.
우선 국정원은 노조의 경영·방송 개입이 심각하고, 노조의 집단행동을 묵인하는 사내의 ‘노조 눈치보기’도 극심하다고 분석했다. 또 2009년 9월 제작진 퇴출 압박에 떠밀려 <100분 토론> 진행자인 손석희씨가 하차한 게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봤다. <피디수첩>이 “광우병 허위보도”, “4대강 왜곡보도” 등으로 수차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지만 자체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근거로 국정원은 방송 장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적쇄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간부들과 지역 문화방송 사장들의 실명을 적시하며 사찰 없이는 알기 어려운 개인 성향과 과거 행적을 들췄다. 예를 들어 정아무개 보도제작국장과 곽아무개 시사교양국장이 ‘광우병 깃발시위 왜곡보도를 방관했는데도 아직 건재하다’고 지적했다. 최문순 전 사장 인맥을 일소해야 한다며 리스트를 제시하고, 6·2 지방선거 기획단에 참여한 기자들의 성향을 거론하며 트집을 잡았다. 주요 프로그램 출연자 섭외도 ‘좌편향’이라며 리스트를 제시하고 문제 삼았다. 이 리스트에 언급된 프로그램은 이듬해인 2011년 대부분 폐지됐고, 간부들은 교체됐다. 성경섭 논설위원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성경섭의 뉴스터치>는 2011년 10월 폐지됐다. 방송인 김미화씨는 2011년 4월 8년간 진행해온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그만뒀으며, 시사평론가 김종배씨 역시 비슷한 시기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하차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여는 동안 한 시민이 이들을 응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국정원의 집요함은 이후 구체적인 ‘세부 추진방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정원은 문화방송 장악을 총 3단계로 나눠 제시했다. 2010년 3월 말까지 인적쇄신과 편파 프로그램 퇴출이 1단계 목표였다. “김재철 친정체제 확립”이라는 목표 아래 지역 문화방송 사장들의 성향을 조사한 리스트를 만들었다. ‘2007년 대선 때 시사프로를 통한 비비케이(BBK) 왜곡보도 지시(유○○)’ ‘최문순 전 사장의 사람임을 자임하며 요직 섭렵(정○○)’, ‘친노조 성향으로 대통령 라디오 연설을 공공연하게 반대(김○○)’ 등이 대표적이다. 국장급, 부장급 간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석희 비호 등 무소신 행태(정○○ 국장)’, ‘6·25 남침유도설 제기 등 종북 좌파 성향(이○○ 실장)’ 등의 언급도 담았다.
2단계는 그해 4월 말부터 연말까지를 목표로 잡은 ‘노조 무력화’였다. 노조의 ‘업무방해’, 파업 등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을 확대하라고 했고,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사법처리하고, 보도·제작본부장 출근 저지에 가담한 노조원 30여명에 대해 무노동·무임금 엄격 적용을 강조했다. “자판기 등 노조의 수익사업을 철저히 차단하고 불법투쟁 및 좌파세력 지원을 위한 자금줄을 차단”하라는 대목도 눈에 띈다. 2011년 3월 이 위원장의 임기만료를 계기로 ‘건전 성향’ 노조위원장 당선을 측면지원하라고 하는가 하면, 불법행위 주동자들에 대해 사법처리 및 손해배상 청구로 강성 집행부를 집중적으로 견제하라는 지침도 등장한다.
마지막 3단계는 2011년 이후 예정된 소유구조 개편 논의였는데, 국정원은 “문화방송 구성원 스스로 민영화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다공영 일민영’ 체제를 ‘일공영 다민영’ 체제로 전환해 시장원리를 확립할 것”을 계획하는 등 지배구조까지 바꾸려고 했다. 서영지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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