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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이제는 멈출때

등록 2017-10-16 20:22수정 2017-10-16 20:33

[동네변호사가 간다]

얼마 전 한국의 한 변호사가 유엔인권이사회에 초청돼 연설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그것도 현직 변호사로서 말이다. 그를 감옥에 보낸 건 종교적 신념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서 군복무를 거부했다. 지금 수형생활을 마친 뒤 변호사 재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나는 그 변호사를 모르지만 정치적·종교적 신념에 따른 진지한 판단을 처벌하는 현행법이 위헌이라는 점은 확신한다. 2004년 이른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첫 하급심 무죄판결이 나온 지 13년이 지났지만, 그사이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해 아무런 진전된 해법도 내놓지 못한 채 아직도 매년 600여명의 젊은이가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고 있다.

내게도 예비역 병장의 예비군 병역거부 사건을 변호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그는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증인’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 후 1년에 몇 번씩 나오는 예비군 훈련을 거듭 거부했고 그때마다 처벌되어 어느새 전과 7범이 되어 있었다. 그가 8번째로 기소되었을 때 급기야 1심 법원은 ‘반성하지 않고 계속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유로’ 실형까지 선고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현역병뿐 아니라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 대해서도 가혹했다. 게다가 예비역 8년 동안 수없이 반복되는 수사와 기소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며 전과 10범을 훌쩍 넘기게 된다. 많은 사람들과 법원마저 이들의 ‘양심’을 의심하고, 군대까지 다녀와서 예비군을 거부하는 것을 비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단 하루도 군복을 입는 것을 견딜 수 없다며 묵묵히 처벌을 받아들이는 그를 보면서 비난과 처벌로도 바꿀 수 없는 양심의 무게를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대만이 2018년부터 모병제를 본격 실시하고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대만은 우리처럼 분단국으로서 안보위험이 있는 나라지만 최근 동성혼 합법화 결정 등 인권 영역에서 주목받는 나라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2000년에 도입해 시행했다. 대만은 당시 군의 정예화, 현대화를 위해 법을 개정하고 정부와 군 스스로 능동적으로 군개혁 차원에서 대체복무제를 택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의도적 병역기피와 군병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대체복무 기간도 당시 현역병의 복무기간인 22개월보다 1.5배 긴 33개월로 하고 연간 대체복무자를 제한하는 쿼터제도 실시했다. 그러나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군내 인권 문제가 개선되었다. 결국 대체복무 기간도 줄였다.

내가 보기엔 대체복무제는 인권 문제를 떠나서 정책적으로 매우 훌륭한 제도다. 대체복무자를 다양한 사회시설에 투입함으로써 사회복지망을 크게 확충할 수 있다. 독일이 통일 후에도 상당 기간 징병제를 유지한 이유도 대체복무를 통한 사회복지 확충의 효과와도 관련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많은 이들이 알듯이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수많은 대체복무제가 이미 실시되고 있다. 즉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을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1년6개월씩 감옥에 보내지 않고서도 어렵지 않게 대체복무를 활용해 정책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2017년 들어 9월 현재까지 하급심 법원에서 총 35건의 무죄판결이 선고됐다고 한다. 이것이 말하는 의미는 실로 무겁다. 이미 법원 안에서도 더 이상의 반복적 처벌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도도한 변화의 물줄기를 오히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막고 있는 꼴이다.

누군가는 물꼬를 터야 한다. 정부든 국회든 대법원, 헌법재판소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지 말고 처벌의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해야 한다. 20년 전 군에 입대하는 내 앞에서 아버지는 “나는 군대 가서 고생해도 내 자식 대에는 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나도 10년 뒤 내 아이에게 똑같은 위로를 하고 싶지는 않다.

송상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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