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제판소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감사위원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이수(64·사법연수원 9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이 헌법재판소 국정감사까지 거부하면서, 정치권의 ‘헌법기관 흔들기’가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다. 김 대행의 사퇴를 요구하며 이를 빌미로 국감까지 파행으로 모는 것은 헌정질서 부정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와 여당도 하루빨리 비정상적인 ‘권한대행’ 체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헌재 재판관들은 16일 사실상 청와대에 소장 후보자의 조속한 지명을 요구했다.
헌재 흔들기를 주도하고 있는 야당은 김 대행이 국회 표결로 ‘부적격 판단’을 받았는데도, ‘권한대행’으로 사실상 소장 역할을 한다는 논리로 국감을 거부했다. 하지만 무게추는 청와대 비판에 쏠려 있다. 청와대가 국회 부결 뒤 의도적으로 소장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고 김 대행 체제를 유지하며 국회의 표결 결과를 무시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조계나 학계에선 헌법재판소법에 정해진 규정대로 역할을 맡고 있는 김 대행을 겨냥해 국감을 거부하는 태도야말로 비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법은 소장이 없으면 임명일이 가장 빠른 재판관을 권한대행으로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김 대행 사퇴 촉구는 불법을 요구하는 것이고, 헌재의 존재와 권위를 부정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이유로 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야당이 현 권한대행 체제의 1차적 책임이 있는데도,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재탕’하는 행태도 문제로 꼽힌다. 한 교수는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국회가 ‘헌재 국감 파행’까지 주도하는 것은 또다른 헌법기관을 모욕하고, 국민들이 상황의 본질을 모를 것이라고 무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회가 상호견제 기관인 사법부를 정치적 필요에 의해 과도하게 흔들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헌재 소장 공백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약한 고리인 김 대행을 ‘볼모’로 정치적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청와대에 날을 세우고 있는 야당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방법의 하나로 김 대행을 모독하고 면박 주는 것은 치졸한 정치적 행태”라며 “특히 ‘소장 권한대행’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국감 일정을 거부하는 것은 ‘적폐’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문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도 “국회가 헌재소장 임명동의권을 국회에, 권한대행 임명권을 헌재에 둔 까닭을 이해하고 ‘3권 분립’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며 “청와대와 여당한테 새 헌재소장 임명을 절차대로 진행하라고 요구하되, 국회의 임무인 헌재 국감도 절차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력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동의안 부결 때부터 야당 설득에 실패했고, 문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비판을 정치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불똥’이 헌재로 옮겨붙었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소장 문제를 국감과 연계한 야당도 잘못이지만, 국회가 거부한 인물을 ‘권한대행’이라는 편법으로 계속 쓰려는 문 대통령도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이 먼저 새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하고, 야당이 여기에 협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헌법재판관 전원(8명)은 이날 오후 회의를 열어 “소장 및 재판관 공석 사태의 장기화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조속히 임명 절차가 진행되어 헌법재판소가 온전한 구성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에게 소장 후보자의 조속한 지명을 요구한 것이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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