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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샘, 현대카드…‘직장 내 성폭행’ 한참 뒤 폭로되는 이유는?

등록 2017-11-09 05:00수정 2017-11-09 10:00

피해자들, 회사서 ‘꽃뱀’ 몰리거나
“개인간 애정문제” 덮으려 하자
수개월 견딘 끝에 인터넷 폭로

사내 권력·인간관계 중첩돼있고
회사가 제대로 처리할지 못믿어
퇴사 결심뒤 알리는 경우 많아

참고 버틴 게 불리한 정황 되기도
“피해자 중심 성폭력 대처 확립을”
한샘과 현대카드 등 직장 내 성폭력 피해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에선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며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피해자 연대 운동) 열풍의 재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미투’라기보다 국내 기업 전반의 곪은 문제가 의도치 않게 일시에 터지면서 불거진 ‘지연된 분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사태의 근원에는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대처하는 한국 기업의 낡은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피해자를 중심에 두는 인식의 부족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실제로 기업의 미흡한 대처는 피해자의 뒤늦은 재폭로로 이어지며 사태 파장을 키운 핵심 요인이다. 한샘의 피해자 ㄱ씨와 현대카드 직원 ㄴ씨의 성폭력 피해 폭로는 모두 수개월이 지나서야 공론화됐다.

‘한샘 사건’의 경우, 지난해 말 입사한 ㄱ씨가 올해 초 몰래카메라 피해에 이어 지난 4월 교육담당자의 성폭력을 경험한 뒤 6개월이 지나서야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피해자인 자신이 ‘꽃뱀’으로 몰린 사내 분위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대카드 사건’ 역시 지난 5월 벌어진 사건이 뒤늦게 불거진 상황이다. ㄴ씨 쪽은 회사가 그동안 “개인 간의 애정 문제”라며 성폭력 피해 호소를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사적인 인간관계와 직장 내 권력관계가 중첩되는 기업 문화 또한 직장 내 성폭력 문제의 빠른 공론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피해자 스스로 권력관계의 열위에 있는 경우가 많아, 피해 사실을 인지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김지현 고양성폭력상담소장은 “직장 내 성폭력은 대부분 직장 내 위계 관계와 함께 이뤄지게 된다”며 “권력관계 안에 놓인 피해자 자신이 ‘가해자에게 호감이 없지 않았다’는 식으로 자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성폭력 사실을 입증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런 기업 특성은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가능성을 높이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9~12월 경찰청 단속 결과 ‘우월적 지위에 의한 성폭력’ 717건 가운데 374건이 직장 내 사건으로 집계된 바 있다.

성폭력 문제 제기에 둔감한 기업 문화 탓에 피해자 스스로 용기를 내기 꺼리는 경우도 생긴다. 여성민우회 류형림 활동가는 “피해자로선 회사에 신고를 해도 제대로 처리할지 믿음을 갖지 못해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하고서야 피해를 알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망설임 끝에 피해자가 폭로에 나서더라도 회사와 수사기관은 미온적인 경우가 많다. 사건 발생 전후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한 사실 자체가 피해자에게 불리한 정황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실제 한샘과 현대카드는 모두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며, 사건을 덮는 데 급급했다. 김지현 소장은 “가해자인 직장 상사가 민망하지 않도록 대응했을 뿐인데, 가해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가 불거지지 않기를 원하는 회사 쪽에선 이런 가해자 진술에 귀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진 변호사도 “성폭행은 둘만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증거가 부족하기 마련인데, 일상적인 관계를 이어간 정황이 나오면 피해자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며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견딘 시간들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이런 대처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런 일이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뒤늦게라도 용기를 낸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한국 사회가 답해야 하는 차례”라고 말했다.

신지민 임재우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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