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방위산업청 산하 공공기관인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 정책기획실 소속 ㄱ씨가 육아 휴직 기간 동안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다가 적발됐다. 기품원 조사 결과, ㄱ씨는 2015년부터 3년간 둘째 아이에 대한 육아 휴직을 신청하고, 실제로는 아이를 부산의 시댁에 맡긴 채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있었다.
최근 저출산 고령화 탈출이 최우선 국정 과제로 떠오르면서 공공기관 등 ‘좋은 직장’을 중심으로 육아휴직 활용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ㄱ씨처럼 육아휴직을 새로운 ‘스펙’을 쌓기 위한 기회나, 이직을 준비하는 발판으로 부적절하게 활용하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는 ㄴ씨도 최근 섭섭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1년 간 육아휴직 마치고 돌아오는 후배를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했는데, 돌아온 건 직장을 옮기겠다며 낸 사직서였기 때문이다. ㄴ씨는 “물론 육아휴직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애초에 이러려고 휴직 신청을 했던 것인지 섭섭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이런 ‘꼼수’에 대한 마땅한 제재 수단은 없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공공기관 대부분은 공무원과 동일하게 아이 한명당 3년까지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마련하고 있다. 공공기관 임직원의 처우에 대해선, 국가공무원법이 정하고 있는 ‘복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3년까지 인정받는 공무원과 동일한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가운데 “휴직 기간 동안 목적 외 활동을 해선 안된다”는 ‘공무원 임용규칙’에 대해 준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공공기관 직원들은 아이 한명당 3년씩 육아휴직을 보장받지만, 이 기간 동안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제재 근거가 없는 셈이다.
ㄱ씨의 사례를 겪은 기품원도 내부적으로 징계 여부를 검토해 봤지만, 마땅히 제재할 근거 조항이 없다는 입장이다. 기품원 쪽은 “ㄱ씨는 육아휴직 기간 중 육아휴직 급여를 받지 않았고 근속연수·퇴직금·호봉승급도 정지됐다”며 “향후 제도 개선을 논의해 볼 순 있겠지만 현행법 상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과의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무원의 경우 육아 휴직 기간 중 육아 외 활동을 하다가 적발되면 징계 등 제재 대상이 된다. 공무원 임용규칙 91조의 7은 ’휴직의 목적 외 사용’의 경우 복직 명령은 물론 징계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 9월 육아 휴직 기간 중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ㄷ경감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린 바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인력 채용은 결국 국민 부담이기 때문에 타이트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육아 휴직을 개인 목적에만 활용하는 것은 한정된 공공의 자원을 개인적 목적에 활용하는 꼴”이라며 “현행법상 육아 휴직의 활용 방법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는 결국 ’도덕적 해이’의 문제”라고 말했다. 강민정 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런 사례가 재발될수록 육아 휴직을 쓰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육아 휴직자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육아 휴직자가 100% 육아에만 몰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제도가 안착되기까지 육아 휴직자의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민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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