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3가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앞에서 인근의 고등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러 가는 선배를 응원하기 위해 모여 있다. 이지혜 기자.
날이 채 밝기 전인 23일 아침 6시30분께 서울 용산구 청파동 3가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앞. 덕성여고, 배화여고, 이화여자외고 1, 2학년인 수능 응원단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날 대학수학능력시험 치르는 선배들을 응원하기 위한 고교 후배들이었다.
70명쯤 되는 응원단은 챙겨온 초콜릿과 핫팩과 함께 수험생 선배들을 기다렸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던 덕성여고 2학년 김은서(17)양은 “내년에 내가 받을 응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오늘 소설이라고 해서 엄청 추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경찰이 수험생의 편의를 봐주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느라 분주했다. 이지혜 기자
아침 7시10분께 수험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준비해온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고 큰 목소리로 응원을 보냈다. 엠넷(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의 ‘나야 나’ 노래를 개사해 “수능대박 주인공은 배화야”라고 노래를 부르는가하면, “수능? 어 대박! 덕성? 어 대박!” 같이 요새 유행하는 ‘급식체’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이화외고 합격길만 걷자’, ‘잘 버텨줘서 고마워요’ 같은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교문으로 향하던 수험생들은 후배들의 응원을 받자 반갑게 웃으며 화답했다. 뜻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등장에 일부 수험생은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날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 곳을 찾은 배화여고 오세훈(57) 교장은 “매년 수능 날마다 나와서 직접 얼굴을 보면서 안아주고 힘을 준다”라며 “어제 학생들에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 최고라고 이야기해줬다. 긴장하지 않고 잘 보길 바랄 뿐”라고 했다.
수험생 딸의 수능 시험장에 함께 온 부모님들도 많았다. 아이의 책가방을 교문 앞까지 대신 메고 오는가 하면, “시험 잘 보라”며 아이를 힘껏 안아주기도 했다. 딸이 평상시 좋아하는 볶음밥과 장국, 과일과 따뜻한 보리차를 싸서 아이 손에 들려줬다는 학부모 서인순(49)씨는 “수능이 일주일 연기돼서 학부모나 수험생이나 심적인 부담이 컸는데, 아이가 의연하고 덤덤하게 견뎌줘서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신광여고에 다니는 이아무개양(18)과 아버지 이아무개(51)씨는 교문 앞에서 별 말 없이 헤어졌지만, 이씨는 시험장으로 향하는 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씨는 “내가 다 긴장되고 떨린다. 부모 마음은 다 같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입실 시간을 10분 앞둔 8시께에는 두 명의 수험생이 경찰의 긴급 후송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하는 일도 있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이들은 서둘러 교문으로 뛰어들어갔다. 수험생을 태워다 준 교통순찰대 박정우 경위는 “아침 7시50분께 경복궁역 근처 차도에서 한 수험생이 울면서 도저히 제 시간에 못 갈 것 같다고 태워달라고 해 아침 8시2분에 시험장에 도착했다. 학생이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고사장을 착각하거나 수험표를 잃어버려 경찰의 도움을 받는 사건들이 벌어졌다. 경북 포항에서는 아침 7시52분께 “제철고인데 제철중으로 착각했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 경찰이 제철고까지 데려다 주었고, 경남 사천에서는 아침 8시께 버스에 수험표를 두고 온 학생의 수험표를 경찰이 삼천포터미널에서 찾아 수험장까지 전달한 일도 있었다.
입실이 끝난 8시 10분, 수능시험장 풍경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수험생들은 긴장을 풀려는 듯 손을 털기도 하고 어깨를 뒤로 쫙 펴기도 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수험생도 있었다. 일부 수험생은 마지막까지 한 자라도 더 보기 위해 공책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올해 수능은 전국 1180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치러지며 총 59만3527명이 응시했다.
이지혜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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