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버텨줘서 고마워요”, “힘내! 할 수 있다”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아침 학부모와 교사·후배들은 일주일 사이 자칫 흐트러졌을지 모르는 수험생의 마음을 다잡는데 힘을 쏟았다. 수험생의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반려견과 함께 응원을 나온 부모도, 웃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후배들도 수험생에게 기를 불어넣기 위해 저마다 안간힘이었다.
이날 서울 중구 이화외고 앞에는 수험생인 ‘주인님’을 응원하기 위해 교문 앞에 선 하얀색 반려견 ‘크롱’이 눈길을 끌었다. 크롱과 함께 응원을 나온 학부모는 “아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아이가 유독 아끼는 반려견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자녀를 수험장에 들여보낸 서인순(49)씨는 “내가 다 떨리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며 “수능이 일주일 연기돼 학부모나 수험생이나 심적인 부담이 컸다. 우리 애는 그래도 의연하고 덤덤하게 견뎌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 도시락으로 평소 좋아하던 볶음밥과 장국, 과일을 싸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 흘리는 모정과 달리, 후배들은 아침부터 씩씩한 목소리였다. 선배를 응원하러 나왔다는 중앙여고 2학년 심미경(17)양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응원이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능 대박!”, “내년에 마주치지 맙시다” 등 손팻말을 준비해 열성적인 응원전을 벌이기도 했다. 수험생들은 교사와 후배들을 보고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여기까지 오셨네요. 힘낼게요”, “수고 많았다. 힘내라” 등의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 포옹을 했다. 응원은 수험생들이 시험장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어졌다.
이날 수능은 걱정했던 여진 등 큰 불상사없이 차분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예년처럼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경남 거제에선 수능 당일 새벽 1시께 갑작스런 복통으로 응급실로 실려간 수험생이 병원에서 마련한 1인실에서 시험을 치렀다. 또 수능 하루전 급성 맹장염으로 강동성심병원에 입원한 수험생도 병원 입원실에서 시험을 보기도 했다. 병원쪽은 “수능을 고려해 수술 일정을 늦춰 잡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기도 안양과 경남 진주에서는 문이 망가져 수험생이 ‘집에 갇히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안양 동안구의 한 수험생은 이날 오전 시험장 입실 마감을 40분 남겨둔 7시30분께 방문 문고리가 망가져 방에 갇혔다. “(딸이) 수능 시험장에 가야 하는데 문고리가 망가져서 방에서 못 나오고 있다”는 수험생 부모의 신고를 접수한 119구조대는 방 문고리를 부수고 수험생을 구출했다. 경남 진주에서도 수험장으로 출발하려던 수험생이 출입문이 열리지 않자 119 구조대 도움을 받아 고사장으로 이동했다.
수험장을 잘못 찾거나 지각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그때마다 ‘지각 수험생’을 위한 긴급 호송작전이 벌어졌다. 서울 서초구 반포고에서는 입실 완료 5분 전인 오전 8시5분께 영등포구청 차량이 여학생 1명을 태우고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도착했다. 고사장을 착각해 여의도고로 갔다가 인근에 대기 중이던 구청 차량을 타고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최근 경기 의정부시로 이사한 한 수험생은 서울 용산구 시험장에 도착했다가 수험표를 잊고 나온 사실을 뒤늦게 알고 집으로 다시 달려갔다. 이 학생은 도착이 늦을 것 같다며 경찰에 도움을 청했고, 경찰은 의정부에서 용산구까지 42㎞를 30분 만에 주파해 학생을 시험장에 입실시켰다.
경찰은 이날 지각하거나 수험장을 잘못 찾은 수험생을 수험장까지 태워준 건수가 955건, 수험표를 놓고 온 수험생에게 수험표를 찾아준 건수는 13건, 고사장을 착오한 수험생을 수송한 건수는 59건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수능과 관련해 연인원 1만8000여명과 차량 4800여대를 투입해 시험장 등 경비와 수험생 편의 제공에 나섰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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