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이런 홀로!?
‘공알못’의 변기 수리기
‘공알못’의 변기 수리기
공알못과 쾌변러의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일까? 변기 물이 안 내려간다거나, 변기 물이 샌다거나, 변기가 깨진다거나, 변기가 가동을 중단하는 일쯤 될 것이다. 한마디로 변기 고장이다. 그 비극을 나는 최근에야 겪고 말았다. 게티이미지뱅크
변기 물탱크가 고장났다
“부속 사서 조립하면 후딱 합니다”
블로그 글들에 용기를 얻었다 나사를 풀 때까진 좋았는데…
‘망했다,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일주일 뒤, 뚜껑을 잃어버린 변기와
무시무시한 호신용품만 남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맥주를 한 캔 따 마시면서,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양변기 물탱크 해체를 시작했다. 나사를 푸는 것까지는 좋았다. 비극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흥분한 나는 무거운 양변기 물탱크를 바닥으로 옮기다 그만 변기뚜껑 위에 올려둔 세라믹 물탱크 뚜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와장창.’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됐다. 뚜껑만 새로 살 수 있는 건가.’ 물탱크를 해체하다 말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화장실 문턱에 주저앉아 다시 온라인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양변기 뚜껑 깨져’, ‘물탱크 뚜껑 교체’…. 30분간의 폭풍검색의 결과는 ‘단종된 변기 모델의 물탱크 뚜껑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진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자책이 시작됐다. ‘그냥 기사님을 부를걸… 이걸 왜 내가 한다고 했지… 애초에 못할 거였는데…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게 이런 건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검색을 하다 또 한 블로그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서울 모처의 아주머니가 쓴 글이었다. “화장실 변기 청소한답시고 변기 물탱크 열었다가 뚜껑 떨어뜨려서 홀라당 깨먹어버렸네요~ 남편은 안 다쳤냐고 묻지도 않고 뚜껑 깨먹었다고 툴툴툴~ 이래서 내편이 아니라 남편인가봐요~.” 아주머니에게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그래, 변기 뚜껑은 청소하다가도 수리하다가도 깨지는 거구나. ‘변기 수리’를 게임으로 치면, 난 악당이랑 싸워보기도 전에 나무 열매 따 먹으려다 떨어져 죽은 꼴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부서진 뚜껑 조각을 쓸어담고, 다시 변기 수리를 시작했다. 엄지손가락만한 나사는 그런대로 술술 풀렸다. 난관은 그다음이었다. 물탱크에서 변기로 내려가는 구멍의 크기가 지름 8㎝ 정도인데, 부속을 고정하는 너트가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았다. 30분 정도 씨름하다 결국 포기했다. 다시 포털사이트 검색을 시작했다. 그 정도 크기의 너트를 풀려면 ‘첼라’라는 공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직경을 조정해 너트를 풀거나 다시 조립하는 공구였다. 머릿속에는 ‘완전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회의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기사님을 부를걸… 이걸 왜 내가 한다고 했지… 뚜껑도 깨먹고… 나사도 못 풀고… 조립도 못하면 어떡하지… 영원히 변기 못 쓰면 어떡하지….’ 결국 부속품을 모두 분해하지 못한 채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바가지에 물을 퍼담아 변기 물을 내리는 노동을 하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평생 이렇게 바가지로 물 푸면서 변기를 쓸 순 없다’고.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첼라를 사러 다시 철물점으로 향했다. 주인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첼라를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첼라가 있긴 한디, 한번 쓸라고 사면 아까울 텐디….” 변기 직경에 맞는 첼라의 가격은 3만5000원이었다. 깨진 변기 뚜껑과 부속품 가격을 더하면 출장 기사님을 부르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낙심하는 나를 보며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도 공구는 하나 건졌잖여~ 살다 보면 쓸모가 있을 거여~ 나중에 집에 강도라도 들면 이걸로 대갈빡을 깨란 말여~.” 그렇게 나는 호신용품이 생겼다. 손으로 아무리 돌려도 풀리지 않았던 너트는 첼라를 쓰니 ‘간단히’ 풀렸다. 부속품을 해체하고 나니 설치는 식은 죽 먹기였다.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부속 교체에 성공했다. 물탱크를 다시 변기 위로 올리고, 급수 호스에 연결해 물을 받았다. 떨리는 손으로 변기 레버를 내렸다. “쏴아아.” 물탱크에 담겨 있던 물들은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가듯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래도 해피엔딩 이것이 일주일간 이어졌던 나의 ‘변기 수리기’다. 부속을 교체하는 대신 제 뚜껑을 잃어버린 변기 물탱크는 지금도 제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돈이 와장창 깨진 대신 신발장 옆에는 무시무시한 호신용품이 생겼다. 엄마는 내 변기 수리기를 들은 뒤 “학교에서 쓸데없는 것만 배웠다”며 혀를 끌끌 찼다.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생 때 ‘기술’이라는 교과목이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중간·기말고사를 위한 암기과목이었을 뿐이었지 싶다. ‘공구 다루는 법’, ‘변기 부속 교체하는 법’ 등 생존을 위한 지식들은 나중에야, 현실에 닥쳐서야 배운 셈이다. 이 거칠고 험난한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려면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혹시나 어려울 것 같으면 열심히 돈을 벌어서 출장 기사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배웠다. 그래도 혼자서 변기 부속 교체할 수 있다던 아저씨와 변기 뚜껑 깨먹고 속상해하던 아주머니, 그리고 큰 공구는 호신용품으로 쓰라는 철물점 아저씨까지, 랜선과 현실을 넘나드는 조언자들 덕분에 공알못이자 쾌변러인 나의 변기 수리기는 해피엔딩을 맞은 셈이다. 신촌 쾌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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