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홀로!?
홀로의 북클럽 체험기
홀로의 북클럽 체험기
집에서 혼자 읽어도 되는데, 왜 북클럽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사람 때문일지 모른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환경이라면, 그만한 지불도 가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친구 따라' 북클럽 문을 두드렸다
‘관심'에 목마른 회원들 사이엔
책 이야기보단 가십들만 오고 갔다 현찰로만 가입비를 받는 운영진
맥주에 위스키까지…매출에만 혈안
시간 되고 돈 되는 미혼을 노린
경험 사업의 일종이었다…순진했다 집에서 혼자 읽어도 되는데 왜 북클럽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사람 때문일지 모른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환경이라면 그만한 지불도 가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읽는 책도 재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듣고 싶다. 게다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어떤 우쭐한 감정,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이렇게 귀중한 영감을 얻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확인하고 싶다’와 같은 심리도 한몫했다. 그래서 압구정 북클럽을 찾았다. 나름 검증된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두어번 나가고 가차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들은 대체로 책이 아니라 사람에 더 관심이 많았다. 책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이나 호기심은 별로 없었다. 그보다는 “압구정 북클럽이 뜬다는데 한번 어떤 사람들이 오나 보자” 정도의 관심이 앞선 사람들이었다. 사정이 그러니 굳이 책의 내용을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었다. 그냥 연예인의 가십, 어디서 들은 가십만으로도 더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 그저 자신의 느낌과 흥미, 최근의 관심사에 대해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나로서는 건질 것이 그다지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 말은 관련 없으니 넘어갑시다”라고 했다간 바로 파문당할 분위기라 입을 닫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자취를 감추고 농담 따먹기 또는 현재 자신의 근황에 대한 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압구정 북클럽의 엄격한 환불 정책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니 참고 들어야 했다. 청춘남녀의 고민을, 그들의 고충을, 그들의 일상을. ‘북클럽’에서 북을 빼도 무방한 클럽이었다. 북클럽 운영자들은 회원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엔 철저히 무관심했다. 대신 매출 증진엔 관심이 많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4개월 단위로 모객된 2천여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추가 매출에 골몰했다. 그것이 바로 맥주 팔기 신공. 국산 맥주는 취급하지 않는다. 생맥주는 없다. 가장 비싼 맥주는 1만5000원이다. 위스키도 판다. 북클럽 한쪽엔 커다란 맥주 냉장고가 있다. 꺼내서 먹으라는 압구정 북클럽의 배려다. 냉장고 옆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보면서 직감했다. 대다수 회원의 목적이 다른 데 있었던 것처럼 주최 쪽의 목적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순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의아했던 것은 바로 사진촬영 시간. 북클럽에서 왜 사진을 찍는지 몰랐으나 주최 쪽은 누구도 이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북클럽은 회원들의 사진을 찍고 사이트 홍보를 위해서 사용한다. “여러분 여기 모여봐요, 우리 다 함께 사진 찍어요.” 그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이처럼 밝고 상냥하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북클럽 관계자 컴퓨터 하드에 차곡차곡 쌓여 업로드된다. 그리고 추가 모객을 위한 마케팅 메시지로 활용된다. 요즘 뜨는 산업이 바로 경험 사업이다. 사람들에게 특정한 경험을 제공하고 그에 해당하는 경제적 대가를 받는다. 이 산업은 원자재가 드는 것도 아니요, 딱히 지정된 원가도 없다. 사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값어치를 받는 셈이다. 쉽게 말해 고수익 사업이고 일정한 기준이 없다. 잊을 수 없는 경험,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면 그 소임을 다하는 서비스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압구정 북클럽은 경험 사업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경험을 찾는, 자신이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속내를 정확히 조준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한 사람들, 특히 독신남녀들 또는 스스로를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힙스터들이 주된 대상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압구정 북클럽에 온 절대다수의 회원은 미혼이었다. 왜 다 미혼이었을까? 상식적으로, 결혼하고 애가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기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달콤한 연애를 하고 있거나 넘치는 관계로 시간 관리에 버거운 사람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구태여 그 시간에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까? 이처럼 북클럽은 시간이 많고, 관계를 필요로 하고, 돈이 많은 사람을 선호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다. 지적인 관심이 많고 관계에 굶주렸어도, 가입비를 내지 못하면 압구정 북클럽의 회원이 될 수 없다. 29만원에 해당하는 무형의 가치를 누리기 위해서 압구정 북클럽을 찾지만 이런 실상을 파악하면 혀끝을 찰 수밖에 없다. ‘나 당했구나’ 하고. “나도 친구 따라 갔다가…” 4개월의 회원 기간이 지난 뒤 난 압구정 북클럽에 다시 등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압구정 북클럽을 다녀왔던 다른 친구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난 그 자리에서 물어봤다. “너도 했었지? 나도 했었는데, 압구정 북클럽.” 그러자 그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라,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 다르다. 난 용기를 내어 말했다. “네 페이스북에서 봤거든. 좋아 보이길래 나도 갔었는데?” 그러자 친구의 탄식이 이어진다. “나도 너처럼 친구 따라 갔다가 똑같이 당했어.” 친구가 강남 간다고 무턱대고 갈 일이 아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강남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경청하라. 페이스북상에 ‘체크인’ 된 것만 보고 ‘좋아요’만 눌러서 끝낼 일이 아니다. 실제로 만나서 얘길 들어봐야 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친구와 난 결국 탄식을 거듭하다 헤어졌다. 그러든지 말든지 압구정 북클럽은 신년을 맞이해 새로운 회원을 모집 중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여전히 열심히 광고를 하며 모객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그 감흥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그런데 그것보다 시간 많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면, 그리고 돈도 있다면 압구정 북클럽을 추천한다. 단 현찰만 가능하단다. 미스터 캄빠리
* 알려왔습니다
이 기사는 글쓴이의 개인적 체험을 위주로 비실명으로 작성된 에세이지만 해당업체에서 글의 내용과 관련해 상세한 해명과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1. 카드 결제는 온라인에서만 지원하지 못합니다. 전자결제대행업체(PG사)에서 북클럽 같은 무형의 멤버십 서비스의 경우 사업의 안정성 등을 우려해 계약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2. 저희 북클럽은 개인사업자입니다. 따라서 입금받는 통장 이름은 대표 이름 'ㅇㅇㅇ(북클럽 상호)'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3. 연매출은 20억원이 넘지 않습니다.
4. 운영자들은 모임 전반에 걸쳐 회원들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철처히 무관심하다"는 표현은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일 뿐 사실과 다릅니다.
5. 사진촬영의 경우, 약관에 '마케팅 활용에 사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촬영 때마다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6. 회원 중엔 40대 이상 기혼자들도 많습니다. "절대 다수 회원이 미혼"은 사실과 다릅니다.
7. 모든 매출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있습니다. 단 한 건의 누락이나 조금의 탈세도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때마다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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