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제269조, 제270조)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열린 24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동안 낙태죄 유지를 원하는 단체 회원들이 건너편에서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2012년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낙태죄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여성가족부는 이번 공개변론을 앞두고 "낙태죄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며 사실상 폐지 의견을 헌재에 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낙태 여성과 수술 의사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놓고 헌법재판소가 24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2012년 8월 헌재가 위헌정족수 6명에 못 미치는 4대4 의견으로 합헌을 선고한 지 6년 만이다.
헌재의 결론은 두세 달 안에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2012년에는 공개변론을 한 지 아홉달 만에 합헌 결정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재판관 9명 가운데 이진성 소장과 김이수·강일원·김창종·안창호 재판관 등 5명이 오는 9월에 한꺼번에 퇴임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헌재의 판단이 6년 만에 바뀔 가능성도 크다. 2012년 결정에 참여했던 재판관들은 모두 퇴임했다. 현재 재판관들 다수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의 현행 유지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돼야 한다”며 낙태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재판관이 위헌정족수인 6명이다. 다른 재판관 3명도 관련 질문이 없었거나 분명한 의사 공개를 거부한 경우다. 공개적으로 합헌을 주장한 재판관은 없다.
결론이 바뀌더라도 ‘낙태 전면 허용’ 쪽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낙태죄를 손질해야 한다는 재판관들도 “낙태 전면 허용에는 반대한다”거나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 보호돼야 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위헌심판의 실제 쟁점도 낙태죄 위헌 여부보다는 임신 초기인 12주 이내의 낙태 허용 여부에 모이는 양상이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낙태죄 위헌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 쪽도 “낙태죄 완전 폐지는 사회에 미칠 파괴력이 너무 큰 게 사실이어서,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는 ‘한정위헌’ 결정 정도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2년 위헌 의견을 냈던 재판관들도 ‘낙태 전면 허용’ 의견은 아니었다. 당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임신 초기인 1~12주까지는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당시 합헌 쪽 재판관들은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 등을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의견이었다.
이날 공개재판에서도 비슷한 공방이 벌어졌다. 산부인과 의사인 청구인 쪽은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낙태죄 처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임부의 건강권,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일률적으로 처벌하고, 모자보건법을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낙태의 범위도 지나치게 좁은 것은 과잉금지”라고 지적했다.
반면 법무부는 “낙태 급증을 막기 위해 처벌이 불가피하다.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과 재판장인 이진성 헌재소장이 나선 참고인 신문에서도 낙태가 허용될 만한 태아 발달단계 등이 거론됐다. 참고인으로 나선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낙태의 비범죄화를 통해 안전한 낙태 방법이 도입되고 의료인의 교육·훈련이 가능해지는 등 여성의 건강과 모성을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의 원칙적 금지는 많은 입법례가 있어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 다만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나 임신 12주 이내 낙태 허용 등 허용한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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