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맘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왔다. 거실 창밖으로 숲이 보이고, 밖에 나가면 산책로가 펼쳐진다. 동네가 너무 조용해 멍 때리기 제격이다. 나무가 많고 풀 내음이 가득한 이곳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사 오고 한 달 정도 지난 5월께 그 녀석을 처음 만났다. 휴일 낮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문틈에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놀랐다. “악, 징그러워!” 냉큼 문을 닫고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베란다 문틈에 벌레가 있어욧!!!!!!” 마치 죽은 사람이라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떠는 내게 관리실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기 여름에는 미국 나방도 날아오는데….” 응? 네? 뭐라고요? 그건 또 뭐예요? 관리실에 가서 벌레 퇴치 가루를 받아와 베란다에 뿌렸다. 방충망을 열어놓은 게 화근이었다.
며칠 동안 베란다 문을 열지 못했다. 열자마자 그 녀석이 툭 집 안으로 날아들어 올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아 이제 어떻게 살아.”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숲과 가까우면 당연히 벌레가 있지. 그것도 모르고 숲숲숲 노래를 불렀냐 바보야!” 큰일 났다.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이사할 수도 없고, 벌레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해. 한동안 막막했다. 이래서 남편이 있어야 하는 건가. 벌레 때문에 결혼을 고민했다.
인터넷 폭풍 검색을 했다. 그 녀석의 정체부터 알아야 했다. 다행히 인체에 무해하고 느릿느릿하고 움직임이 별로 없다고 했다. 외부 숲에서 아파트 벽을 기어 방충망 빈 구멍으로 들어와 베란다 문틈 사이에 숨어 있는단다. 이름 모를 수많은 경험자에 따르면 ‘○○○○’을 뿌리면 효과가 직방이란다. 약국에 가서 한꺼번에 서너개를 샀다. 숲과 가까운 동네에서는 이 녀석이 간혹 나타난단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구나, 별거 아닌 녀석이구나 싶어 내심 안심했다.
하지만, 살면서 벌레를 볼 일이 얼마나 있나. 처음 만난 그 녀석은 너무 징그러웠다. 처음에는 약을 뿌리는 것도 공포의 순간이었다. 그 녀석을 찾아 베란다 문을 열고 틈을 스캔하다가도 막상 보이면 “꺄악~” 소리를 지르며 보지 않고 쏘아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베란다 문틈에 약을 뿌려놓는 게 일이었다. 간혹 죽은 녀석을 발견하면 또 “꺄악” 소리를 질러댔다. 처음에는 ‘죽은 놈’을 차마 치우지 못해 동생을 소환한 적도 있다.
한 달 가까이 그 녀석만 생각하다 보니, 뭐지 정이 들었나. 이 녀석이 베란다 문틈에 붙어 있어도 담담해지기 시작했다. 보이면 쏘고, 보이면 쏘고를 반복하다 보니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표정은 점점 무표정으로 변했다. 급기야 ○○○○이 없을 때는 휴지를 말아 꾹 눌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 나 벌레에도 익숙해진 거야?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아, 이래서 남편이 있어야 해”라던 생각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벌레 전문가에 따르면, 이 녀석은 봄과 가을 즈음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진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나타날 때가 됐다. 처음처럼 그렇게 징그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은 준비해놨다. 벌레야, 이젠 널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얼른 떠나주렴.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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