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을 둘러싸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원장님, 너무 오래 말씀하신 것 같다. 대통령님은 상고법원에 대해 부정적이다.”
2015년 8월6일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오찬회동에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배석했다. 양 대법원장 손에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브이아이피(VIP)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양 대법원장이 오찬 내내 상고법원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자, 우 수석은 회동 뒤 양 대법원장에게 ‘의미 없는 일을 하셨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당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에 대해 설명하는 데 제약이 있었고, 자리가 끝나고 나서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특조단은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주요 사건 재판을 ‘흥정’하는 문건을 작성한 배경으로 검찰 출신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집요한 상고법원 반대를 들었다. “사법부의 공식적 청와대 접촉창구는 민정수석실이지만 우병우 민정수석을 직접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는 것이다. 당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이라는 양 대법원장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고법원=대법원장 인사권 강화=상고법원에 문제 법관 임명’으로 판단한 민정수석실의 “영향력 약화와 우회 전략”이 필요했다.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 ‘국정운영 협력 판결’을 그러모아 청와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지만, 대통령과의 독대를 기대했던 자리에 우 전 수석이 배석하면서 대통령을 설득할 기회를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법원행정처의 태도는 부정적으로 바뀐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비에이치(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은 “청와대가 상고법원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사법부의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민정수석실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자는 계획이 나온다. 특조단은 “당시 우 전 수석의 상고법원 방해 공작이 너무 집요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울컥한 심정에서 직접 작성한 문건”이라며 문건의 의미를 축소했다.
임 전 차장은 우 전 수석과 수시로 통화한 사실이 박영수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특조단은 “우 전 수석은 카운터파트를 법원행정처장으로 생각했다. 본인과는 통화한 적이 없다”는 임 전 차장의 진술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은 특조단 조사를 거부했고, 일방적 주장이 담긴 ‘서신’만 보내왔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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