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8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고발 여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면서, 이는 그동안 법원이 국정농단 재판 등에서 내놓은 유죄 취지에 비춰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은 지난 25일 조사보고서를 통해 “부적절한 사법행정권 행사”라면서도 “관련 문건 내용이 대부분 실행되지 않았다”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성립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련 사건 경험이 많은 판·검사들은 ‘실행’ 여부와 무관하게 법관 사찰 및 재판 개입 검토 문건을 작성하게 한 것 자체가 직권남용죄 성립 요건인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씨제이(CJ) 이엔앰(E&M)에 대한 고발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법원은 “(실제 고발이 실행되지 않았더라도) 일부라도 이행됐다면 직권남용으로 봐야 한다”며 유죄 판결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다스의 미국 소송 전략 검토와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됐다.
특조단은 보고서에 “인사 불이익 부과 방안 문건을 작성·검토한 인사심의관 등은 ‘문건의 성격상 인사총괄심의관실 소관 업무가 아님에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시해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적시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30일 “해당 문건 작성이 행정처 심의관(판사) 업무가 아닌데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진술까지 있다. 딱 떨어지는 직권남용”이라고 짚었다.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나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를 보고받았다면 직권남용 공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반드시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만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하급자가 기꺼이 했는지, 억지로 했는지는 양형을 정할 때 고려되는 요소일 뿐”이라고 했다.
‘최고법원의 유죄 심증 우려’를 이유로 대법원이 직접 검찰 고발이나 수사의뢰를 하기는 곤란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특조단이 판사라는 ‘신분’과 특조단의 ‘직무’를 헷갈린 것 같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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