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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판사 복귀 뒤에도 ‘BH 설득 문건’ 만들고… 동료 법관 뒤 캐고…

등록 2018-05-31 06:00수정 2018-12-18 11:22

정다주 심의관, 행정처 떠난 뒤도
임종헌 지시에 맞춰 현안자료 작성
인사총괄실·윤리감사관실도 동원돼
특조단, ‘임종헌 스타일’ 탓하지만
개인일탈 아닌 조직적 권한남용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7년 9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7년 9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BH(청와대)는 대법원과 헌재라는 두 사법최고기관이 어려운 국정 현안에 얼마나 조력·협력하는지에 따라 양 기관을 평가할 것임→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는 시점을 찾을 필요가 있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의혹을 받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은 2014년 12월3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의 지시를 받은 정다주 기획조정심의관(현 울산지법 부장판사)의 손에서 탄생했다. 정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기조실장으로 재직하던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기획조정심의관으로 함께 일했다.

■ 긴급조치 판결로 ‘청와대 설득’ 제안

그는 2015년 2월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을 처음으로 인정한 2심 판결 전후로 두 건의 문건을 작성한다. 2015년 2월8일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에서는 ‘BH·여권 원세훈 1심 판결 당시 반응→환영·안도. BH→비공식적으로 사법부에게 감사 의사를 전달하였다는 후문이라고 적었다. 선고 다음 날인 2015년 2월10일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서를 작성했다. ‘BH의 최대 관심 현안→항소기각을 기대하면서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행정처에 전망을 문의. 행정처→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는 입장.’이 문건은 지난 1월 대법 추가조사위원회에서 공개해 ‘재판 뒷거래’ 의혹을 낳았는데, 정 부장판사는 당시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2015년 2월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재판 업무에 복귀했지만, 이후에도 ‘부적절한 문건 작성’에 계속 관여했다. 2015년 7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다”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재판을 소개한 ‘현안관련 말씀자료’도 정 부장판사가 작성했다. 2015년 2~3월에는 행정처에서 주시하던 판사들의 비공개 카페 게시판에 배우자의 아이디를 빌려 ‘민감한 글은 일정 기간 게시 후 자진 삭제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정 부장판사는 이 글의 초안을 임종헌 실장에게 보냈고, 글을 올린 뒤 카페의 동향도 분석해서 보고했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진상보고서를 보면, ‘헌법적 가치나 원칙을 무시하거나 외면한’ 판사들의 부끄러운 행태가 고스란히 기록돼있다. 최근 드러난 판사 사찰·재판 개입을 임 전 차장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행정처 심의관들까지 가세한 ‘조직적 권한남용’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5년 7월 당시 시진국 기획제1심의관(현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은 기조실 심의관들과 협업해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문건을 작성해 임 기조실장에게 보고했다. 이 문건에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 제시’라는 제목 아래 긴급조치 피해자에게 국가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이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합의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적혀있다. 긴급조치 판결을 청와대 설득방안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것도 시 부장판사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근혜 청와대가 전교조와 함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삼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의 후속조치도 행정처는 고민했다. 김종복 당시 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현 광주지법 목포지원 부장판사)이 2015년 2월 작성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대책검토’ 문건을 보면, 지역구 지방의원 의원직 상실 방안으로 ‘지자체장으로 하여금 소송을 제기하게끔 하는 방안’이 나온다. 문건은 ‘법원이 개입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감당하기 힘든 파장이 있을 수 있음’을 문제점으로 적었다. 김 부장판사는 최근까지 ‘사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이었으나 진상보고서가 공개된 지 3일 뒤인 28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법발전위는 행정처 개혁, 재판·인사 제도 개선 등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을 논의하려 지난 3월 발족했다.

이에 대해 김종복 부장판사는 <한겨레>에 "보고서는 법원이 나서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시키려는게 아니라, 연구부서로서 통진당 의원 관련 행정소송상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해 쟁점을 검토한 것이다. 지자체장의 소송 제기는 보고서 작성 지시자의 지시에 따라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보고하면서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혀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로 알려질 경우 감당하기 힘든 파장'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반대하기 위한 논리였다"고 김 부장판사는 말했다.

행정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의원직 상실에 반발한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의 행정소송에도 관심이 컸다. 문성호 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현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지시로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행정소송 예상 및 파장 분석’, ‘통진당 사건 전합 회부에 관한 의견’을 작성했다. 행정과 재판이 분리된 사법부에서 행정처가 전합 회부 심의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대법관의 재판 권한을 침해하거나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규진 상임위원은 행정소송 1심 재판장의 심증을 파악한 심경 당시 사법지원총괄심의관(현 변호사)의 보고를 받아, 앞 문건에 ‘청구인용이 예상’된다고 추가로 기재했다. 특조단은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관들이 구체적인 사건의 담당 재판장에게 선고기일 연기 요청하기 위해 연락하고, 결론에 대한 심증을 파악한 것은 사법행정에 의한 재판 개입사례로서 심각한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준 당시 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현 서울고법 고법판사)은 2015년 2월9일 ‘국정원 선거개입 (원세훈) 사건 항소심 선고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특조단 조사보고서에 119차례나 등장하는 ‘원세훈’ 관련 문건 중 하나다. 문건에는 “이 사건 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절대적인 핵심 쟁점일 듯”, “과연 항소심 재판부가 본 것 같이, 한쪽 정당 후보자 선출일을 대선국면 시작점으로 볼 수 있을지”, “전체적으로 판단하여 전부 유죄 또는 전부 무죄로 봐야 하는 것 아닌지” 같은 쟁점이 담겼다. 또 ‘심각성’이라는 제목 아래 “국정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확정되면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였다는 비난뿐만 아니라, 선거 자체가 불공정한 사유가 개입하였다는 폭발력을 가질 수 있음”이라는 내용도 적혀있다. 문건은 원세훈 상고심의 보고를 맡은 신현일 당시 재판연구관(현 수원지법 평택지원 부장판사)에게 전달돼,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 동료 판사 빨강·파랑·검정 구분…재산조사도

판사들은 동료 법관 ‘뒷조사’나 비판 판사 탄압에 동참하기도 했다.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이었던 2016년 3월 양승태 대법원장의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인권법연구회의 영향력을 줄이려 ‘중복가입자 정리’를 처음으로 제안한다. ‘전문분야 연구회 개선방안’ 문건을 보면 ‘우리법연구회 출신을 중심으로 한 연구회 핵심세력이 법관사회 내 영향력 확대를 위한 거점으로 활동’한다며 종합적 대책검토가 필요하다고 나온다. 법관들의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을 막으면 인권법연구회 회원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도 분석했다. 특히 이 문건에서는 인권법연구회 소모임인 ‘인사모’의 자연소멸을 목표로 한 시기별 로드맵이 처음 제시됐다. 그는 2015년 7월6일 ‘상고법원에 대한 법원 내부 이해도 심층화 방안’에서 법관들이 상고법원 반대 입장을 외부에 알리면 ‘보수 언론을 통해 대응 논리 유포→반대 입장 폄하·고립화 전략 추진’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에 개입하려 한 문건도 판사가 만들었다. 김봉선 당시 서울중앙지법 기획법관(현 전주지법 부장판사)은 2015년 3월 특정 후보를 추천하고, 서울중앙지법 기획라인이 의장 경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취지를 담은 ‘‘단독판사회의 관련 보고’ 문건을 작성해 임종헌 기조실장에게 보고했다. 2016년 3월 정다주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박아무개 판사에게 불필요하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것’을 대응 기조로 삼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 관련 현안 검토’를 작성했다. 박 판사는 양 대법원장의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였다. 선거 뒤 노재호 행정처 인사 제1심의관(현 서울고법 판사)이 작성한 ‘서울중앙 수석부장파사 재편 방안’에는 “수석부장이 단독판사들과 회식자리 등을 자주 가지며 이슈 대응 논리를 적절히 설파해 판사회의가 집행부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고 적혀있다.

2016년 3월 김민수 당시 기획 제2심의관(창원지법 마산지원)은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를 확대하겠다며 만든 ‘사법행정위원회’ 후보자 64명을 자의적인 기준으로 적색(1순위), 청색(2순위), 흑색(3순위)로 나눈 문건을 작성했다. 김 심의관이 2016년 4월 작성한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추천 결과 보고’에는 ‘사법행정위원회에 대한 악의적 폄하 시도를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고등법원장에게 법관에 대한 정보 제공’이라고 나온다. 실제 이 리스트의 1순위 후보 9명 중 절반인 5명이 위원이 된 반면 3순위 후보자 37명 중에는 1명만 위원으로 임명돼 ‘실행’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민수 심의관을 통해 임종헌 차장의 지시를 받은 임효량 당시 행정처 기획 제1심의관(현 수원지법 판사·휴직)은 2016년 8월 ‘각급 법원의 주기적 점검 방안’을 작성했다. ‘주기적 점검’ 방안으로는 ‘가용한 비공식적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며 ‘신뢰할 수 있는 거점법관(행정처 심의관 출신)을 통한 해당 법원의 동향 주기적 파악’을 제안했다. 특조단은 “문건을 반려했고 실장회의에서 논의한 사실이 없다”는 임종헌 전 차장의 진술과 결과를 담은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려된 계획이라고 판단했다.

임종헌 전 차장은 ‘판사 사찰’에 인사심의관실과 윤리감사관실까지 활용했다. 2016년 3월 당시 임종헌 차장이 김연학 인사총괄심의관(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게 지시해,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인사자료를 활용해 작성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문건에는 연구회 회원들을 분석한 뒤 ‘핵심 회원에게 선발성 인사, 해외연수 등에서 불이익 부과’ 등을 검토하는 내용이 나온다. 김세윤 윤리감사관(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2015년 9월 ‘차○○ 판사 언론사 기고 관련 겸직허가’ 문건에서 품위유지 의무, 공정성 유지 의무,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여부를 검토했다. 임 전 차장은 2016년 4월 김현보 윤리감사관에게 차 판사의 재산관계 검토를 지시했고, 윤리감사관실은 ‘차○○ 판사 재산관계 특이사항 검토’ 보고서를 만들어 보고했다.

박정희 정권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국가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사의 징계를 임 전 차장 지시로 처음 검토한 것도 윤리감사관실이다. 2015년 9월 최두호 행정처 윤리감사심의관(현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은 ‘법관의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 문건에서 ‘직무감독을 할 필요성 자체는 있지만 재판의 독립에 비추어 범위에 관하여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같은 달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은 김민수 심의관은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문건에서 ‘위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법관연수 강화 등을 제시했다.

■ 다른 길 선택했던 판사

10년 차 이상 판사로 사법행정을 전담하는 심의관들은 왜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들였을까. ‘임종헌 전 차장의 장기간 근무(4년 7개월)로 인한 폐단’을 사법행정권 남용의 원인 중 하나로 본 특조단의 결론은 이렇다. “임종헌 차장이 대법관으로 제청될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심의관들은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임. 그에 따라 심의관들은 임종헌 차장으로부터 보고지시를 받게 되면 임종헌 차장이 선호하는 문서 스타일, 예컨대 공격적이고 전략적인 문구, 정세 분석과 정무적 판단, 극단적인 방안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시각에서의 대응방안 검토, 로드맵의 예시 등을 보고서에 넣으려고 노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심의관들이 평소 생각하였던 헌법적 가치나 원칙은 무시되거나 외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됨.” 임 전 차장의 ‘스타일’ 탓을 하며 ‘위·아래’ 모두에 면죄부를 주는 결론이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한 판사도 있었다. “기조실 컴퓨터 보면 판사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와 관련해 인권법연구회 간사가 이의를 제기한 내용에 반박논리를 전파하라.” 2017년 2월 이탄희 당시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는 기획 제2심의관이 됐는데, 위와 같은 이규진 상임위원의 발언을 듣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판사는 행정처의 만류로 사직하는 대신 안양지원으로 돌아갔다.

한 판사는 “보고서를 보면 도저히 판사가 한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더구나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판사들이 지금도 재판을 하고 있다. 잘못의 정도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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