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과 청와대에서 만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VIP(대통령)가 갖는 우려의 원인 분석. ‘배신 트라우마’로 인하여 3권 분립의 한 축에 대하여도 쉽게 신뢰를 주지 아니하는 성향”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지난 5일 추가 공개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 문건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문건은 2015년 8월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양 대법원장의 오찬 회동을 앞두고 7월28일 임종헌 당시 기획조정실장 지시로 작성됐다. 이 문건에는 청와대와 ‘국정협조’를 통해 상고법원 도입 설득에 나서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보고서는 대통령이 갖는 사법부 불신의 원인으로 ‘배신 트라우마’를 꼽으며, 그 근거로 대통령의 1991년 ‘친필 일기’와 2007년 출간된 자서전까지 발췌하는 ‘세심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생략된 대목 중에는 ‘신중한 보수로서 청렴과 헌신을 강조하는 국가관과 국정철학 유사함’ 등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 성향의 공통점을 분석하거나 ‘공공, 노동, 금융, 소득 부분 개혁 등 주요 국정 과제에 협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대목도 있다.
2007년 출간된 박 전 대통령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특조단 발표 때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재판 거래’ 의혹이 짙은 문건은 또 있다. 2014년 12월3일 기획조정실에서 작성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보고서는 반발 세력을 무마하는 방안으로 “현재 수사·재판 중인 의원 수 ‘야당 34 대 여당 5’ ? 결국 야당 의원들에게 최후의 의지 대상은 대법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제시한다. 대법원장 스스로 신성하다고 천명한 재판을 두고 ‘여당 재판’과 ‘야당 재판’을 구분짓고, 재판을 ‘볼모’로 정권 맞춤형 판결을 추진하겠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개별 정치인을 상대로 한 ‘맞춤형 로비’ 전략을 세운 듯한 문구도 특조단 발표 때 제외됐다.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 및 대응 방향 검토’(2015년 4월2일 작성) 문건에는 상고법원 추진을 위한 방안으로 “비박계로 금번 스캔들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김무성, 유승민 대표 상대 집중 설득작업”을 하고 “김무성 대표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추구하고 이에 자부심을 갖는 스타일이므로, (상고법원이) BH(청와대)와 무관한 김무성 대표의 독자적인 작품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접근”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특정 정당의 전략보고서에나 등장할 법한 이런 내용이 쏟아지면서, 문건 추가 공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5일 특조단 조사 대상이 됐던 410개 문건 가운데 조사보고서에 인용된 문건 90개와 애초 비공개된 문건 8개를 공개했지만, 공개 기준을 뚜렷이 밝히지는 않았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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