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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죄다 날라버리니께 일 잃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제”

등록 2018-06-09 09:51수정 2018-06-09 10:54

[토요판 기획연재] GM이 버린 도시 (2) 불안의 고리
지난 5일 군산항 제4부두 경비용역 한유덕(가명)씨가 부두 저편으로 지나가는 화물선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수출하는 지엠 전용 부두가 공장 폐쇄 뒤 쓸모를 잃고 텅 비어 있다. 8년 동안 부두를 지켜온 한유덕씨도 일을 잃었다. 이문영 기자
지난 5일 군산항 제4부두 경비용역 한유덕(가명)씨가 부두 저편으로 지나가는 화물선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수출하는 지엠 전용 부두가 공장 폐쇄 뒤 쓸모를 잃고 텅 비어 있다. 8년 동안 부두를 지켜온 한유덕씨도 일을 잃었다. 이문영 기자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5월31일 공식 폐쇄됐다. 공장을 둘러싼 풍경은 그대로인데 아무것도 그대로일 수 없는 시간들이 공장을 떠난 사람들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희망퇴직 대신 휴직을 택한 사람들은 부평·창원·보령공장으로 전환배치 되길 고대하며 일용직 노동을 한다. 그들은 전환배치를 기다리며 불안하고 그들이 옮겨갈 공장은 다른 이유로 불안하다. 글로벌기업의 맨 끝자락에서 서로의 불안이 꼬리를 문다. 정규직의 불안 저편에선 실직자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반출되는 집기들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전 지구를 사업장 삼아 공장을 짓고 폐쇄해온 거대 기업이 한국의 작은 도시를 쓰고 버릴 때 쓸려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① 쓸려나가는 사람들)된다.

바다로 간 남자

그의 이야기는 바다에서 시작됐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5월31일) 5일 뒤 장철범(가명·30대 후반)은 배에 있었다. 바다 끝에 옆구리를 붙인 기름배 위에서 그가 숨을 참았다.

배가 정박한 땅 저편으로 덤프트럭과 레미콘트럭이 꼬리를 물고 오갔다. 본래 바다였던 땅이 영역을 넓히며 바다를 밀어붙였다. 몸집 큰 트럭들이 바퀴를 덜컹거릴 때마다 마른 펄 먼지가 피어올라 바다로 날아들었다.

장철범은 바다로 표시되는 땅에서 배를 닦았다. 바다에 바위와 흙을 쏟아 부어 만든 땅이었지만 아직 지도가 육지로 받아들이지 않은 땅이었다. 바다를 쫓아내는 땅은 하제항과 이어져 있었다. 새만금방조제가 물을 가두면서 물에 기대 살던 하제마을(2006년 33㎞의 세계 최장 방조제 완공으로 군산·김제·부안의 12개 어항 중 11개가 기능 상실)도 물을 빼앗기고 뭍에 갇혔다. 포구였던 기억을 잃은 하제마을은 마을이었던 자취도 잃어갔다. 조개잡이로 유명했던 마을이 구멍 뚫린 벽과 허물어진 집만 남은 철거촌(미군부대 군산비행장 탄약고 안전구역 확보 사업)으로 바뀌었다.

“하제는 이제 사람 사는 마을이 못 돼네.”

마을을 떠나 시내로 이주한 구택수(가명)가 ‘새만금지구 방수제(육지를 만들기 위해 쌓는 방조제 내 제방) 만경2공구’ 앞에서 덤프트럭의 진로를 안내했다. 바위덩이를 가득 싣고 온 트럭 기사들이 그에게 적재량을 말한 뒤 바다 위로 트럭을 몰았다. 바다에 가는 실처럼 놓인 흙길을 기어간 트럭들이 길의 끝에 바위를 쏟아 부었다. 포클레인이 바위를 고르고 다지며 길을 이었다. “내 아들놈은 지엠 직원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구택수가 먼지를 달고 달려오는 덤프트럭에 수신호를 보냈다.

“지엠허고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허고 죄다 날라버리니께 일 잃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제.”

장철범이 ‘여기’ 만경2공구(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공유수면)에서 이틀째 ‘기름배’를 청소했다. 새벽 6시에 업체 차를 탄 그는 네비게이션도 위치를 찾아주지 못하는 바다 혹은 땅으로 이동해 배에 올랐다.

펄과 모래를 뽑아 올리는 준설선들을 오가며 기름을 공급하는 배였다. 장철범이 좁고 경사 급한 사다리를 타고 배의 유류 탱크를 오르내렸다. 배가 주유 기름을 벙커씨유(인체유해·대기오염 물질 배출)에서 경유로 바꾸면서 탱크에 남은 기름을 빼내는 일을 했다. 컴컴하고 미끄러운 탱크 안에서 끈에 매단 랜턴 불빛에 의지해 4명이 기름 찌꺼기를 긁어냈다. 찐득한 기름 침전물에서 도로에 갓 깐 아스팔트 냄새가 진동했다. 가스가 호흡을 막고 눈을 자극했다. 어둠과 냄새와 가스로 꽉 찬 기름 탱크 안에서 장철범은 “지금까지 해본 모든 일들 중 가장 고된 경험”을 했다.

지인의 아버지가 하는 작업에 끼어 장철범은 하루벌이로 일했다. 일당(20만원)이 적지 않아 시작했으나 계속 할 수 있을진 자신이 없었다. “오늘 같으면 더는 못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지만 ‘일 있다’는 전화가 오면 결국 ‘알겠다’고 답할 것이었다. 일이 생길 땐 그는 뭐든 하려고 했다.

장철범이 기름 탱크 안에 묻혀 있을 때 들고나는 사람 없는 지엠공장 출입구(동문) 옆에선 털 빠진 길고양이가 평화로이 누워 까치들과 영역을 다퉜다. 공장(올란도·크루즈 생산)이 가동 22년 만에 숨을 멈춘 날 회사는 직원들에게 ‘공식 폐쇄’를 알리는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았다. 장철범은 5월31일 ‘마지막’을 보러 공장에 가지 않았다. 폐쇄를 공인(발표는 2월13일)하는 날이라고 해서 ‘다시 들어갈 일 없는 공장’ 앞을 서성이고 싶지 않았다. 5월30일과 31일 하루 사이에 달라진 풍경은 없었다. 공장은 그대로였고, 기계도 그대로였으며, 적막도 그대로였다. 그대로인 공장에서 자기만 빠져나온 것 같은 장철범에게 결국 그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장 폐쇄 이틀 뒤(6월2일) 그는 경남 고성으로 가서 엘엔지(LNG·액화천연가스) 선박을 끄는 예인선을 청소했다. 세정제를 뿌려 엔진 기름을 닦아내고 새 기름을 채웠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휴직자 장철범(가명)씨는 다른 공장으로의 전환배치를 기다리며 일용 노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그가 새만금지구 방수제 공사 현장에서 기름 탱크를 청소한 급유선의 모습. 뚜껑이 열린 직사각형 상자가 기름 탱크 입구다. 장철범 제공
한국지엠 군산공장 휴직자 장철범(가명)씨는 다른 공장으로의 전환배치를 기다리며 일용 노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그가 새만금지구 방수제 공사 현장에서 기름 탱크를 청소한 급유선의 모습. 뚜껑이 열린 직사각형 상자가 기름 탱크 입구다. 장철범 제공

한국지엠 군산공장 휴직자 장철범(가명)씨가 새만금지구 방수제 공사 현장에서 청소(일용 노동)한 급유선의 기름탱크. 장철범 제공
한국지엠 군산공장 휴직자 장철범(가명)씨가 새만금지구 방수제 공사 현장에서 청소(일용 노동)한 급유선의 기름탱크. 장철범 제공

612명 중 200명

“부럽네.”

같은 ‘직’(일종의 팀) 동료들끼리 가진 술자리(6월4일)에서 다들 그의 ‘알바’를 하고 싶어 했다. 오랜만에 ‘모두 모이자’며 만든 자리였지만 15명 중 6명(4명 휴직·2명 희망퇴직)만 참석했다. 장철범은 술자리에 온 2명과는 지난달 학교 유리창과 건물 물탱크 청소(일당 10만원)를 다녀왔다. 전기 배선 보조(10만원) 일도 했다. 자재를 어깨에 올리고 계단으로 5층까지 나른 뒤 기술자들의 전등 교체·설치를 도왔다. 군산공장의 생산량 감소 뒤 출근과 대기를 반복했던 그는 이제 ‘일당 인부’를 찾는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대기했다.

한국지엠 휴직자(월 생계비 225만원을 30개월 동안 노사가 절반씩 지원)인 그는 ‘소득신고 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드물게라도 일용 노동을 하며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공장 폐쇄 직후 아내는 결혼 10년 만에 보험 일을 시작했다. 부부에겐 30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부평 402명, 창원 83명, 보령 49명.”

폐쇄 이튿날 공장별 전환배치 지원자 수를 알리는 노동조합 문자가 도착했다. 그가 지원한 공장의 신청자 수를 보며 장철범은 머리가 복잡했다.

지엠 군산공장 5월31일 공식폐쇄
휴직자들, 부평·창원·보령공장으로
전환배치 기다리며 일용직 노동
장철범은 아내 부담 덜어주려
새만금 공사 기름배 ‘고된 청소’

휴직 612명 중 1차 배치 200명
인사고과·근태·자녀수 등으로 순번
‘올해 못가면 기약 없다’는 불안도
텅 빈 지엠부두 지키는 옌볜 출신
실직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

끝까지 희망퇴직원을 쓰지 않고 휴직을 택한 군산공장 정규직은 612명이었다. 3년 동안 대기하며 부평·창원·보령 공장으로의 전환배치를 기다릴 사람들이었다. 노사 협의를 거쳐 결정된 1차 전환배치 규모는 200명이었다. 부평 16명, 창원 58명, 보령 10명, 사무직 등 26명, ‘공풀’(라인에 배치되지 않고 생산 지원) 90명으로 할당됐다. 연말에 정년퇴직으로 비는 60명이 2차 전환 인원으로 잡혔다. 휴직자의 절반에 못 미치는 42%만 올해 안에 다시 일할 수 있었다.

“노사 잠정합의(4월23일) 때와 상황이 달라지는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5월28일 열린 조합원 공청회에서 지회장(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군산지회)이 ‘선정기준’을 공개하며 말했다.

특수 직무에 필요한 자격증 20%, 일반 근속년수 10%, 최근 3년 간 근태성적 10%, 최근 3년 간 인사고과 10%, 부양가족 수 10%, 학자금 수혜 자녀수 10%, 포상 10%, 고충처리 20% 등의 기준이 제시됐다. 기준에 따라 자료를 취합한 뒤 최종 선정은 회사가 하는 방식이었다.

장철범의 머릿속에서 “당황”과 “실망”이란 단어가 떠돌았다.

전환배치 순위를 정할 때 ‘공장 폐쇄 반대 집회 참석률 등을 우선 고려하겠다’고 조합은 설명해왔다. 입사년도가 비교적 늦고 아이가 어려도 열심히 나가면 ‘약점’을 만회할 수 있다고 장철범은 생각했었다. 집회 참석률은 ‘고충처리’라는 이름으로 20%만 배정됐다. 인사고과나 근태, 포상 등은 회사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사쪽의 ‘선택’이 우선될 수 있다는 걱정이 휴직자들 사이에 일었다. 1번부터 612번까지 순번을 정한 뒤 결원이 생길 때마다 차례대로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순번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장철범은 기대를 접었다. 연말까지 260명에 들지 못하면 아예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도 있었다.

김지상(가명·40대 중반)도 “마음을 비웠”다. 그는 부평공장에 지원했다. 생산직 필요인원이 106명(16+공풀 90명)인데 희망자가 402명이었다. 아이들에게 ‘6월부터 부평에서 일하며 주말마다 내려온다’고 알렸던 그도 공청회를 다녀온 뒤 부평행 시기를 가늠하지 못했다. 연말 2차 전환배치 때라도 60명에 포함될 수 있길 바랐다. 울먹이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서야 공장 폐쇄 사실을 알았던 그는 군산공장이 위치한 소룡동에서 태어나 소룡동에서 살았다. 폐쇄 발표 뒤부터 소룡동의 집값이 급락했다. 분양을 받았다가 위약금을 물고 계약해지한 동료들도 있었다.

희망퇴직과의 사이에서 “심리적 통제불능”을 겪으며 휴직을 선택한 김지상은 전환배치에서 후순위로 밀리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었다. 대상자에 들어 전환배치 되더라도 새 공장 동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가슴이 무거웠다. 군산에서 옮겨온 사람들 탓에 기존 직원들의 고용이 흔들릴 수 있다는 염려로 부평·창원은 불편해했다. 2교대에서 1교대 전환 논의가 있을 만큼 부평 2공장(말리부·캡티바 생산)의 가동률은 30% 안팎까지 떨어져 있었다. 1교대가 되면 지난 연말처럼 정규직을 대신해 ‘인소싱 해고’(하청 공정을 정규직이 회수하며 계약해지)될 수 있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려했다. 불법파견(2월13일 인천지방법원 1심 판결·5월28일 고용노동부 창원공장 근로감독 결과)을 인정받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면 일자리 부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정규직들에겐 있었다. 국가와 정부 단위로 협상을 벌이며 신설과 폐쇄를 거듭해온 글로벌기업의 맨 끝자락에 그들이 있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각자의 불안을 자극하며 서로를 얽어맸다.

반출되는 집기들처럼

그의 이야기는 문 닫힌 부두에서 시작됐다.

“버리고 가버렸다 아임까.”

한유덕(가명·40대 중반)이 자동차 없는 자동차 부두 안에서 탄식을 뱉었다. 공장 정문에서 북서쪽으로 2.7㎞ 거리에 군산항 제4부두가 있었다. 군산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배에 실어 수출하던 지엠 전용 부두였다.

한유덕은 중국 지린성 연변에서 왔다. 1999년 대우자동차에 의자 시트를 납품하는 업체(부산)에서 일했다. 이듬해 귀국 뒤 10년 만에 재입국한 그는 군산에서 지역정보지의 구인 광고를 보고 경비용역 일을 얻었다. 대우를 인수한 한국지엠의 수출용 자동차들을 관리하며 8년 동안 부두를 경비했다.

2015년(글로벌지엠의 시장 철수로 군산공장의 유럽·러시아 수출 물량 급감) 말부터 부두로 들어오는 수출차량이 급격히 줄었다. 4부두를 통해 한 달에 2만~2만3천대까지 유럽으로 떠나던 군산공장 자동차가 지난 1월 200여대를 마지막으로 더는 선적되지 않았다. 군산의 지엠 납품업체에서 일하던 고향 친구들도 모두 새 일을 찾아 떠났다. 2011년 9명이었던 경비용역은 2018년 2명만 남았다.

폐쇄(5월31일)돼 텅 빈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 앞에서 지난 5일 한 방송사 기자가 리포팅을 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폐쇄(5월31일)돼 텅 빈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 앞에서 지난 5일 한 방송사 기자가 리포팅을 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그는 한국지엠과 화물운송 계약을 맺은 ‘세방’으로부터 경비업무를 재하청 받은 업체 소속이었다. 공장 폐쇄 다음 달 세방이 운송계약을 털고 나가면서 한유덕과 그의 동료들은 일을 잃고 부두에 남겨졌다. 5월엔 한국지엠이 부두 내 사무실에서 집기를 뺐다. ‘지엠 실직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반출되는 집기들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부두 저편에서 화물선 한 척이 흐르듯 지나갔다. 불 켜지지 않는 부두로 어둑한 저녁이 떨어졌다. 4부두와 접한 5부두(씨제이대한통운이 사용)의 경비로 채용되길 희망하며 한유덕은 지킬 것 없는 부두를 지켰다.

“여기서 일한 게 8년인데 어찌 이러나.”

그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지키고 있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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