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김도요 판사, 법원내부망 글
“전국법관대표회의 고발나서는 게 적절”
“재판거래 합리적 근거없다” 법원장들에
“뭐가 더 나와야 합리적인지 알려달라”
‘재판거래’ 문건 ‘덕담’ 치부한 양승태
“손이 떨리고 눈물 난다” 비판
“전국법관대표회의 고발나서는 게 적절”
“재판거래 합리적 근거없다” 법원장들에
“뭐가 더 나와야 합리적인지 알려달라”
‘재판거래’ 문건 ‘덕담’ 치부한 양승태
“손이 떨리고 눈물 난다” 비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4월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국법원장간담회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해 각급 대법원장이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법관대표회의에 드리는 의견- 판사들 명의의 고발행위 필요성에 대하여
1. 조사보고서를 보고 모두 참담함을 느끼고 있는 이 시기에, 각 법원을 대표하여 중대한 의안들을 심의하셔야 하는 대표분들 어깨에 놓인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선언 의안’과 관련해서,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사법부가 이 문제에 대하여 가장 진정성 있게 책임을 지는 방식이 형사고발이라는 의견을 드리는 것이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2. 어제저녁에 대법원장님께서 ‘법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발언이 헌법과 법률이 정해 둔 외부에서의 견제를 저어하거나 배제하는 의도가 아니라, 이번 사태가 사법부의 조직문화와 의사결정 구조에 기인한 문제이기 때문에 조직 내부의 개혁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타인의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신조인 제가, 글솜씨도 말솜씨도 동료들보다 한참 모자란 제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은 사찰과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판사님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간의 비겁함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어서입니다. 한참 정신없었던 인사철에 연구회 중복 가입해제조치에 관한 게시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 왜 법관들이 학술적 모임을 여러 개 가입할 수 없는지, 예산의 배분 편의라는 것이 학문과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지, 왜 이 시점에 맥락을 찾기 어려운 그와 같은 공지가 올라오는 것인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내 문제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민주적 조직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으면서도, 법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행정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표시하였다는 이유로 사찰을 받고, 중징계를 받고, 행정적 관리의 대상이 된 판사님들을 위하여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습니다. 비겁한 저도 이렇게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한데, 법원을 위하여 고민하시고 의견을 표명하셨다가 사찰의 대상이 되신 판사님들은 어떻게 힘든 일정의 재판을 하시면서, 일상을 영위해가고 계신 걸까요? 강단이 없는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워, 마음 깊은 곳에서 위로와 존경을 보낼 뿐입니다.
4. 또한, 모두가 당혹스러운 이 상황에서, 법관들 스스로 생각하는 합리적인 해결방안들을 기탄없이 밝히고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현시점에서 법원 내 의견 차이를 빨리 봉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 조직 내부에서 발생한 잘못에 대하여 법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국민에게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전개되고 토론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법부를 위하는 길이고, 근본적으로 사법부가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5. 제가 법관들이 주축이 된 형사고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경험과 연륜이 풍부하신 선배 법관들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법관들께서 외부기관에 의한 수사의 위험성, 차후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게 될 법관의 지위를 고려할 때 고발이 부적절하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현 상황에서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판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처지에서, 사안에 내재한 위험을 충분히 분석하고 신중함을 강조하는 태도를 존중합니다.
2) 그러나 전국법원장간담회 논의결과를 요약한 문서에 나온 「합리적 근거 없는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이라는 표현에 대하여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행정청의 심의관이 심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하여 재판장과 주심판사와 전화하여 행정처의 상급자에게 심리방향과 경과를 보고한 사정이 드러났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하여 행정처 심의관의 의견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확정될 경우 정치적 파장에 대한 우려된 문건이 해당 사건의 보고 연구관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직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 청와대와 협조 및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방안으로 ‘적정한 영장 발부 외’에는 다른 협력 방안이 없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행정부가 실질적인 당사자이자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많은 사건들이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던’ 사안으로 열거되어 있습니다. 중요사안들에 대하여 ‘사건처리방향’과 ‘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한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심지어 사법부가 행정부의 변호인처럼,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의 필요성과 방식을 제안하는 문건도 나왔습니다. 인사와 전보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행정처가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심증을 알아보는 것, 자신의 의사가 담긴 문건을 연구관에게 제공한 것은 법정 외에서 재판부 또는 재판담당자와 접촉한 것으로 당사자가 이를 알 수 없고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절차적으로 부적절합니다. ‘사후’라는 점을 강조하기는 하나, 법원행정처에서 사건의 이해당사자인 행정부와의 협력을 기본 방향으로 전제하고 중요사안들을 바라보고 해결하고 조율하려는 시각이, 행정부가 원하는 바를 법적으로 실현하는 방안까지 문건에 담겨 있는데, 어떻게 다수의 법관들과 국민들의 의심을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심리를 다한 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법권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사정을 목도하고, 이러한 핵심적인 가치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훼손되었는지,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미칠 가능성이라도 있었는지, 평가에 앞서 그 사실관계를 철저히 파악해야 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어떤 사실이 더 나와야지 조사의 단서가 되는 ‘합리적인 의혹’인가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더 나와야 재판거래에 대한 합리적인 의혹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러한 사정을 더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을 내신 선배법관님들이 알려 주십시오.
3) 제가 옆에서 보았던 모든 판사님들이 사건의 변호사와 잘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재판 계류 중이면 상당 기간을 두고 전후로 사적으로 접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문적으로 아무리 관심있는 사건에 대하여도,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이 아니면, 그 담당 재판부에게 먼저 다가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재판부의 심증을 묻는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판사님이 계시다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에도 변호사나 당사자가 지인이라도 ‘너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판사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렇게 재판했다는 판사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적지 않은 판사들이 기일연기 등 절차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변호사의 전화를 전혀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의사소통은 원칙적으로 법정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절차적인 투명성과 엄격함이 저희가 말하는 ‘형식적·법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기본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판사 역시 편견과 의견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변론 이외에서의 접촉이 판사 개인의 심리와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판사들이 그 과정에서 지인들로부터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고 인간관계가 좁아지더라도, 공정한 재판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서 그러한 시각을 감수하고 사는데도, 법관의 재판 전체가 매도되는 데 대해서 참담하고 억울함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위와 같은 문건들이 드러난 상황에서 어떻게 저희의 억울함을 지금의 시점에서 내세울 수 있습니까? 재판과 관련해서 절차적이고 실체적인 부분까지 의심할 수 있는 문건들이 저렇게 많이 나왔는데, 어떻게 당사자들에게 판결이 신성하고 우리는 바르게 재판했으니 그대로 수긍하라고 합니까?
4) 전임 대법원장님께서 연수하실 때마다 하셨던 말씀, ‘법관이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지 않아서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수결의 원리에 의하지 않는 개개인과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하여 헌법이 부여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사법부의 정당성은 국민의 신뢰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을 새겨들었습니다. 권력분립의 원리에 따라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여야 하는 사법부의 기능과 역할이 무거운데, 사후적으로라도 정부운영에 협력한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덕담’으로 치부하며 허용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조사보고서와 인용된 문건들의 문구를 보면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나는데, 이러한 문건의 내용이 충분히 충격적이지 않아서 일상적인 일이라서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일반 판사들이 재판이 끝난 후에 지인인 변호사나 당사자를 만나더라도 ‘재판으로 당신에게 협력했다. 당신의 편의를 봐 주었다.’는 말을 해도 범죄가 되지 않고 괜찮은 것입니까? 제가 재판의 당사자나 변호사와 사후적으로라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정이 감사실 등을 통해 드러나면, 저의 재판 과정과 절차를 검증해 보지 않으실 것입니까? 저는 검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법부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드러난 문제의 심각성에는 공감하시면서도 내부적인 해결을 하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문건들에 드러난 내용을 보면, 사법부 내의 조직 문화와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행정처의 문화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제가 아는 몇 명의 심의관들은 주변 판사 중에서도 가장 성실하고, 능력과 열정이 충만하며, 인성까지 바르고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고 좋아하고 존경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모인 조직에서 위와 같은 문건이 작성되었다는 것은 특정한 성향을 가진 개개인의 일탈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한 동기부여 기재와 의사결정 절차가 작동하기에 위와 같은 문건이 작성되었는지, 조직 내부의 시스템을 성찰하고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장 없는 체포’와 같이 절대적인 기본권마저 상고법원을 위한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상고법원을 위하여 대법관이 많아지면 특정 성향의 대법관이 들어올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대통령이 상고법원의 법관을 더 임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서 스스로 행정부에 대한 견제의 기능, 다양성이 전제되는 민주주의적 조직원리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외부로부터의 독립이 침해되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존재하고, 사법부 독립을 다시 침해하려는 행정권력이나 입법권력이 들어섰을 때 참조할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된다는 것도 경청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사법부 외부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행태로 인한 내부에서의 독립이 침해되었다고 보이는 사건이고, 개개의 인권보호를 위하여 행정부의 견제기관이 되어야 하는 사법부의 역할을 스스로 내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제가 식견이 짧아서 다른 나라에서 이런 유사한 예가 있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국민은 이미 사법부의 자체 조사를 위하여 많은 기회를 주면서 기다려 주었고, 조사위원회도 강제조사권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조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행정부나 수사기관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하여 자체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보내던 냉소적인 시각에 비하여, 몇 번의 거듭되는 자체조사 결과를 보기 위하여 그간 묵묵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한다.’는 속담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내부에서 밝히고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법부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을 때 외부의 견제를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직 내부의 문제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객관적일 수 있고, 강제수사권의 권능을 부여받은 수사기관이 사실관계를 더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행정권력이나 입법권력이 들어선다면, 그때는 법관 개개인의 양심과 논리와 이성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나약한 무기이지만, 그 무기는 국민들의 신뢰 때문에 무엇보다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사법부의 행정을 담당하는 곳에서 스스로 중요한 임무를 방기하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 했던 정황이 보이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에게 많은 재량을 주고 그래도 사법부를 신뢰해왔던 국민들에게 철저히 책임지고 자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겠지만) 외부로부터의 독립 침해 시도가 있을 때 사법부 옆에 국민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6) 이와 같은 의혹이 있는 상태에서, 법관으로서 가장 엄중한 방식과 내용으로 책임을 통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행정법규에서 과태료나 행정처분 외에도 형사책임을 묻고 있는 입법방식을 선택하고 있고, 법원의 사무분담에서도 형사재판을 가장 공정하게 하기 위하여 다양한 구성의 판사들을 배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독립적인 수사기관에서 사실관계를 밝히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하면서 최종적으로 책임의 유무와 형량을 판단하게 되는 형사재판절차가 책임의 소재를 가장 공정하게 평가하고 미래의 범죄를 억지하는 가장 유의미하고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탄핵정국에서 인구에 회자되던 카뮈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역 없이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묻는 것 이상의 사법부가 진정성 있게 책임을 통감하는 방식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수사기관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해서, 민주주의적 견제와 균형을 위하여 마련한 시스템과 제도를 존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일반 국민들에게 시스템과 제도를 존중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 힘든 삶을 살면서, 생계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수사를 받거나 재판에 참석하는 등 시스템을 존중해가며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법관이라면 기존의 고위 행정가들과 달리 견제와 균형을 위해 마련된 시스템을 철저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의 존재 이유며 시작입니다. 그것이 사법부에 폭넓은 사법 재량과 독립을 부여한 국민을 향해서, 우리는 재량과 자유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남용하였을 때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식으로 가장 엄격하게 책임을 진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7) 이미 다양한 시민사회에서 고발이 들어간 상태에서 추후에 재판을 담당할 수도 있는 법관들이 고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범죄피해를 봤다거나 부당하게 재산상 권리를 침범당한 경우에, 저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하여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히 보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소송법에서는 법관의 제척과 기피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법관이 개인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당사자가 되는 것이 허용되는 만큼, 사법행정권을 행사한 법관들이 현저하게 권한을 남용한 사안에 대하여 사법부 전체가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일정한 범위의 법관들이 고발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록에 있는 고발장을 늘 접하지만, 고발장을 작성하고 접수하고 출석해서 진술하는 데에는 모두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사법부 내부에서 권한이 남용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그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는 기존의 고발인을 포함한 국민들에 전가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일으킨 조직 문화를 만들거나 그에 순응하였고,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법부가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고발장이 누구의 명의로 어떠한 형식과 내용으로 작성될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고발장에는 형사법적인 관점에서의 법리적 해석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법부의 성찰을 바탕으로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가장 정의로울지에 대한 철학과 사상이 담겨야 할 것입니다. 문건작성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꼬리 자르기’ 방식이 아니라, 더 큰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고발장의 내용이 작성되기를 소망합니다.
8) 제척과 기피의 문제가 있는 만큼, 상고심을 담당하실 수 있는 대법원장님 명의로 고발장을 작성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행정부 내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만들어진 감사원 같은 기관이 있다면, 그 기관에서 고발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기는 합니다. 윤리감사실이 원래의 기능상으로는 가까운 기관인 것으로 보이지만, 윤리감사실에서 근무하던 판사가 재산신고의 당부 판단을 위하여 제공된 정보를 수집 목적을 벗어나 행정처의 다른 심의관에게 제기된 사정도 드러난 이상 윤리감사실도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법관대표회의를 가장 적합한 기관으로 생각합니다. 재판과 회의 참석을 병행하시면서, 숙의를 위한 제대로 된 시간도 부여받지 못하고 계시면서, 제가 더 어깨를 무겁게 해드리는 것이 송구합니다. 대표로 선출되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사법부를 위해서 숙의와 의사결정을 담당하실 수 있는 인품과 능력이 있으셔서 동료들의 지지를 받고 나오신 분들이십니다. 어떠한 형식과 내용으로 고발장이 작성되어야 가장 책임감 있는 방식일지, 이후 있을 재판에서 제척과 기피 문제를 고려했을 때 어떤 범위의 법관들이 고발인 명의에 포함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하여는 법률가로서의 기술과 리걸 마인드와 지혜가 적극적으로 발휘되어야 할 영역이므로 법관의 대표들이 가장 잘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논의가 어렵다고 해서, 사법부가 국민에게 가장 진정성 있는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 양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9) 고발장을 작성하는 것, 그에 담긴 의견을 기초로 또 다른 법관을 판단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부담일 것입니다. 저 자신도 그와 같은 사건을 맡게 되지 않기를 기원하고, 맡게 되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료 법관의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공개된 법정에서 상대방에게 반론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러한 반론이 동등하게 고려된다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동료, 선배, 후배 법관의 의견도 공개된 법정에서 다른 당사자의 의견과 동등하고 투명하게 제시된다면, 그 의견을 고찰하여 상대방과의 의견 사이에 더 논리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재판 업무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일부 법관의 의견이 고발장의 형태로 표시되는 것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가 제시하는 사실과 논리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평가하는 것은 재판작용의 본디 모습이지, 부적절한 영향이 아닙니다. 이러한 재판 작용을 ‘영향’이라고 걱정하기 이전에, 공개된 변론이 아닌 상대방 당사자가 인지할 수 없는 방법으로 행정처 심의관에게 심증을 알리는 정황이 있었는데, 행정처와의 의사소통 과정이 과연 재판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인지 자성해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절차에 잘못된 점이 있기는 하나 최종적인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고 확신한다면, 왜 그런지 사실과 논리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당 재판부가 형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증거가 부족하여, 법리상 확대해석이 불가능하여 무죄가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어떤 후폭풍이 몰아쳐도 다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저희의 숙명입니다. 대다수가 분노하는 사안에서, 권력분립의 원리를 후퇴시킨 행동에 대하여 입법의 불비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정치과정을 통하여 빨리 입법이 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재판부의 논리에 수긍할 수 없고 그 원인이 사법부 내부의 문제를 사법부가 심판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장래에 의무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받아야 하는 사건들의 유형을 입법화하는 등의 대안도 국민들이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형사책임의 추궁과 시스템에 대한 고찰의 기회가 사법부의 성찰이 담긴 고발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10) 요즘 제가 즐겨보았던 미드에서 나왔던 장면이 머리에 다시 아른거립니다(대사를 외울 정도로 머리가 좋지 못하여,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Boston Legal이라는 드라마였는데, Denny Crane이라는 전설적인 변호사가 치매 등의 영향으로 나이가 들어 기행을 일삼게 되자(참고로 Denny Crane은 항상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늘상 말하고 다닙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로펌의 골칫거리가 되고, 그의 동료가 안타까움에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Denny, where you were once something to aspire to, you're now becoming something to parody."
사법권과 법관의 독립이 사법부 스스로에 의하여 훼손되어 버린 현실에서, 우리가 그에 상응하는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법관이 ‘사법권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당연한 가치를 논하는 데 냉소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사법권과 법관의 독립’이 헌법이 예정한 고귀한 가치를 표상하는 언어 그대로 남게 될 수도 있고,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관대표회의의 대표님들의 심도깊은 논의와 지혜로움을 통해 법관 독립의 가치가 본연의 빛을 발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에 남을 수 있도록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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