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해 “수사 협조” 입장을 밝히면서, 그동안 대법원의 입장 정리를 기다리고 있던 검찰은 곧바로 본격적인 수사 채비에 들어갔다.
검찰은 김 대법원장이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사법부라고 해서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의 예외가 될 수 없고,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도 없다.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대목에 대해 ‘낮은 수준의 수사 의뢰’로 받아들이고 있다.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이자 확실한 진상 규명을 검찰에 요청했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 핵심 관계자는 “사실상의 수사 요청이라고 본다. 검찰이 고발 사건 수사를 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번 수사로 짊어져야 할 부담을 크게 던 셈이기도 하다.
이르면 내주 초부터 본격화할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이 맡게 된다. 고발 사건이 이미 배당돼 있기도 하고, 외부에 별도의 수사단을 꾸리는 것보다 수사 효율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의 기존 부서가 맡되 필요한 경우 수사인력을 더 붙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검찰은 휴대전화·컴퓨터 등에 남아 있는 증거를 복구·확보하는 ‘디지털 포렌식’이 이번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대검과 인천지검·수원지검에 있는 포렌식 관련 인력과 장비를 사전 점검하는 등 수사에 대비해왔다.
이번 수사와 관련해 현재까지 검찰에 접수된 고발 사건은 지난 5일 전국철도노조 케이티엑스(KTX)열차승무지부, 키코공동대책위원회 등 17개 단체가 낸 것을 비롯해 모두 18건에 이른다. 이들이 낸 고발장에 피고발인으로 적시돼 있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임종헌 전 차장 등이 주요 수사 대상이다.
검찰이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재판 거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청와대’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해 보인다. ‘원세훈 재판’ 관련 문건에 등장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곽병훈 전 법무비서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장’(長)으로 기록돼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2015년 8월6일 ‘상고법원’ 문제로 단독 회동을 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이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도 크다.
검찰은 김 대법원장이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우선 대법원 자료부터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또 임 전 차장 등 주요 피고발인 소환에 앞서 이들의 지시를 받고 문제의 문건을 작성했거나 법관 동향정보 등을 수집한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법관)들부터 참고인으로 불러 실체 파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정농단 특검 수사에서 드러났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박병대 전 행정처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간 통화내역도 이번 수사의 주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특조단 조사 자료는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게 되겠지만, 필요하면 추가로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직권남용을 비롯한 법 적용에 대한 판단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뒤에 따져볼 문제”라고 말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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