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사법 농단’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사에 협조할 뜻을 밝히면서,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재판이 정치권력과의 거래 대상이 됐다는 의심을 풀지 않고서는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내비쳤다. 김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에 대해 수사를 받을 수도 있는 고위법관을 중심으로 반발 기류도 있지만, 극단적인 갈등과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재판 거래’도 당연한 수사 대상”
김 대법원장은 대법관들과 법원장회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회의의 ‘반대 의견’과 달리,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는 부분에 대한 의혹 해소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법관 그 누구도 (재판 거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 믿음”이라며, 법원 내외부에도 “‘재판 거래’라는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수사는 불가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7일 열린 전국법원장간담회에서 35명의 법원장은 “합리적인 근거 없는 ‘재판 거래’ 의혹 제기에 깊이 우려한다”며 단정적 어조로 ‘재판 거래는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김 대법원장은 사법 신뢰의 핵심인 ‘외관의 공정성’이 무너진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재판은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외관도 공정해 보여야 하기에, ‘재판 거래’는 상상할 수 없다는 개인적 믿음과 무관하게 이 부분에 대한 의혹 해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에는 사법부도 예외일 수 없고, 법원 조직이나 구성원 수사도 거부·회피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수사 필요성을 분명히 한 셈이다.
■ 고위법관들의 반발과 이견
“재판 거래는 없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던 3차 조사단(특별조사단) 단장이었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은 이날 대법원장의 대국민담화 직후 입장문을 발표해 “재판 거래 의혹은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청와대와의 부적절한 소통은 없었다’는 공동 입장문에 이어, 또 다시 재판 거래 의혹과 무관한 대법관들까지 동조해 대법원장 입장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수도권 지역 한 법원장도 “‘재판 거래’가 수사 대상이라는 게 대법원장 뜻이라면 법원장 간담회 입장과 조금 다르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대법관들이 말씀하신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성명을 통해 “(재판 관련) 문건이 대법관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된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대법관들의 입장은 언어도단에 불과하다. 의혹을 덮으려는 듯한 집단적 의사 표명은 자제하고 겸허히 검찰 수사를 기다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 일선 판사들은 긍정적 반응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에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진상규명 의지를 명백하게 밝혔다”고 했고, 다른 판사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절충”이라고 평가했다. 법원 안팎에선 고위법관들의 반발 기류와 이견이 실제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고 고위법관을 소환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법원에서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법원장도 “대법원장 입장이 예상했던 수준이어서 갈등이나 반발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칫 집단 반발이 ‘법 위의 법관’이라는 사법 불신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현호 선임기자, 고한솔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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