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나와 차량에 오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8월 퇴임하는 고영한·김신·김창석 대법관의 후임 후보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는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후보추천위)가 20일 열린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우리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온 고위 법관들의 태도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큰 상황에서 대법관 임명제청권자인 김 대법원장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어느 때보다 강한 사법개혁 의지를 김 대법원장에게 요구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판사 뒷조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에 이뤄지는 대법관 후보 추천 절차인 만큼, 김 대법원장 역시 이런 기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후보추천위가 심사하는 대법관 후보 41명 중에는 문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재판 거래 의혹마저 “합리적 근거가 없다”며 단정적으로 선을 그어버린 법원장 15명이 포함돼 있다. 또 동일한 맥락에서 검찰 수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 서울고법 부장판사 11명도 후보군에 들어 있다. 20~30년간 법원 엘리트 코스를 차곡차곡 밟아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양 전 대법원장 때 법원장이나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거나,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낳은 ‘공범 의식’이 국민의 사법 불신 여론과 동떨어진 입장을 내놓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일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대법관까지 된다면 사법개혁이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판사도 “사법개혁 의지도 없고 기존 고위 법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이 대법관이 된다면, 앞으로 고법부장 특권 축소 등 법원행정처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학교, 성별, 출신 등 그동안 대법관 구성의 ‘바람직한 기준’이 됐던 ‘형식적 다양성’은 물론, 철학과 가치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생각의 다양성’도 이번 기회에 확보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2015년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국정운영 뒷받침’ 등 재판 거래를 의심케 하는 내용들이 무더기로 나왔지만, 현직 대법관 13명 전원은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것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법관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해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됐다”는 입장을 연거푸 내놓았다.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시기엔 대법관이 아니어서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이들까지 ‘그럴 리가 없다’며 동참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로만 꾸려진 ‘대법관 동일체’가 낳은 한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이 임명제청한 박보영 전 대법관은 ‘여성·비서울대·판사 출신 변호사’라는 배경 덕에 시민의 기본권과 사회적 소수자 권익에 ‘디딤돌’이 될 거란 기대를 받았으나 의미있는 판결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획일적인 지역·학교·성 분배가 아니라 당사자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가 중요하다. 국민과 사회의 다양성을 대법원 판결에 담아낼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이 대법관이 돼야 판결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대법관 후보군 41명은 여전히 ‘서오남’(서울대·50대·남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가 30명, 50대 이상 남성은 36명이다. 출신도 단조롭다. 판사가 33명으로 다수다. 교수·변호사가 8명이지만 판사 출신이 5명이다. 교수·변호사 8명 중 5명은 김앤장·태평양·율촌·광장 등 대형 로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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