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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법농단’ 검찰 수사, 어디까지 파헤칠까

등록 2018-06-23 10:29수정 2018-06-23 11:07

[다음주의 질문]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전국 어느 곳을 가나 법원과 검찰청은 ‘다정하게’ 붙어 있다.

보통 한울타리 안에 나란히 또는 앞뒤로 자리 잡은 모양새가 형제나 자매 같다. 재판 등 업무 편의를 위해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다지만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 그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은 대부분 서로를 안다. 법과대학 동문이거나 사법연수원 선·후배이니 모를 수 없다.

그래도 두 기관의 ‘서열’은 분명하다. 법원이 위고 검찰이 아래다. 영장, 체포, 구속, 유·무죄 판결 등 수사와 재판의 거의 전 과정에 걸쳐 검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법원이 갑이고, 검찰은 을이다. 이 관계를 과거 어느 검찰 간부가 설명해준 일이 있다. “전국 어느 법조단지를 가봐도 검찰청사는 법원 청사보다 낮게 지어져 있습니다. 옛 건물뿐 아니라 신축해서 옮기는 경우에도 예외가 없어요. 최종 판단자인 사법부를 존중하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지만, 법원과 검찰의 ‘갑을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법원은 힘이 세다. 과거 덕수궁 옆 서소문에 있던 법조단지가 서초동으로 옮길 때의 일이다. 대검찰청이 먼저 청사 터를 장만했다. 반면 대법원은 서소문에 머물 작정이었다. 그러다 홀로 서소문에 남을 수 없다는 사정을 뒤늦게 깨달은 대법원이 부랴부랴 부지 물색에 나섰을 때는 서초동에 청사가 들어설 만큼 넓은 땅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급해진 대법원은 검찰에 대검청사 터를 나눠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말이 좋아 제안이지 사실상 강요였던 셈인데, 늘 아쉬운 입장인 검찰로서는 응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검찰청 부지는 두 동강이 났고, 남쪽 대로변의 더 좋은 자리를 대법원이 차지했다. 지금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과 대검찰청 건물이 남쪽을 향해 있으면서도 주 출입구를 옆구리인 동쪽으로 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검찰청사 ‘고도제한의 법칙’은 엄히 지켜졌다.

케이티엑스(KTX) 해고승무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대법원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에 내려진 케이티엑스 해고승무원들에 대한 판결에 관해 “재판연구관실의 집단지성과 대법원 소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케이티엑스(KTX) 해고승무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대법원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에 내려진 케이티엑스 해고승무원들에 대한 판결에 관해 “재판연구관실의 집단지성과 대법원 소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 기관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봐주는 일도 많다. 주로 검찰이 눈을 감아주는 경우가 많은데, 2000년 병역비리 사건 때다. 검찰은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고 서울지법에 예비판사로 근무하던 이아무개씨가 허위 진단서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입건하지 않았다. 검찰 고위 간부가 법원 고위층에 ‘조용히’ 알려주는 선에서 덮으려 했다. 그러나 이를 부당하게 생각한 어느 검사의 제보로 <한겨레>에 기사가 나가면서 그 예비판사는 사표를 내고 신체검사를 다시 받아 군에 입대했다.

이런 일을 과거지사로만 여긴다면 착각이다. 2015년 5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수뢰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조 전 청장에게 돈을 건넨 건설업자가 당시 부산고법의 문아무개 부장판사에게도 여러 차례 룸살롱과 골프장에서 접대한 사실을 파악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건설업자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수사를 접고는 대법원에 기관통보만 하고 말았다.(<한겨레> 2017년 6월15일치 1면) 당시 그 기관통보를 접수한 사람이 지금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떠오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판사가 아닌 다른 공무원이 그런 접대를 받았다면, 검찰이 기관통보만 하고 넘어갔을까.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초반 기세가 매섭다. 최정예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를 투입하는 예상 밖의 강수를 두고, 법원이 자체 조사한 파일만이 아니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넘겨달라는 요청도 공개적으로 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관련 주요 인물에 대한 압수수색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수사에는 반드시 고비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특히 이번 수사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상당수 법관들의 존재는 검찰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압수수색영장이 기각되기라도 하면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이번 수사와 상관없이 다른 많은 사건들에서 법원 눈치를 봐야 하는 검찰의 처지는 그대로다. “법원에 찍히면 나중에 변호사도 못한다”는 어느 검사의 말을 허튼 푸념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검찰이 적당한 선에서 법원과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법조계 일부의 의구심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검찰은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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