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5일 오후 국회 앞마당 개헌자유발언대 앞에서 열린 세계 동물권 선언의 날 ‘오늘은 내가 동물대변인, 나의 목소리를 들어줘!’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헌법 개정 시 동물의 권리를 명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현행법 체계에서 동물은 ‘물건’이다. 민법 98조는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물은 ‘유체물’, 즉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으로 분류된다. 즉 우리 법 체계에서는 인간이 아니면 모두 물건인 것이다. 동물권 단체들은 이 조항이 물건을 ‘생명이 있는 동물’과 ‘그밖의 다른 물건’으로 구분하지 않아 동물을 물건 취급하도록 하고 있다며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5년 2월, 광주에 사는 10살짜리 반려견 ‘해탈이’가 이웃집 남성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이 남성은 ‘재물손괴죄’로 기소됐고, 광주지방법원은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해탈이의 주인과 함께 “민법 98조는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어떠한 특별규정도 두지 않음으로써 헌법 제 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헌법 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줄 것을 광주지법에 신청했다. “동물의 소유자는 자신의 동물이 타인의 잘못으로 상해를 입거나 사망을 당하는 것을 감내하지 아니할 자유, 일반인은 비인도적인 방법의 사육, 운송, 도살 등의 방식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할 때의 혐오감을 느끼지 아니할 자유 등을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반려동물은 가족의 구성원인 소중한 존재이지만, 현행법은 아직도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누군가 나의 반려동물을 죽인다 해도 그 가치는 동물의 교환가치만큼만 인정되는 게 현실이고,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과 손해배상 수준 역시 아주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광주지법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기각했고, 이에 이들은 다시 지난 2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 사건에 대해 사전심사를 한 뒤, 각하하지 않고 전원재판부의 심판에 회부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헌법소원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이형찬 변호사(법무법인 수호)는 “그동안은 이 규정에 대한 심판 자체를 받을 기회가 없었는데, 각하하지 않고 심판에 회부했다는 것은 헌재도 동물의 지위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판단해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미 의원(정의당)도 지난해 3월 민법 98조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별도의 법률이 보호되는 한도 내에서 이 법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민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함으로써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과 손해배상은 그 잔인함에 비해 처벌 정도가 낮다”며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4월, 끓는 물에 600여 마리 고양이를 죽인 범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사실상 무죄나 진배없는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개정안 취지를 설명했다.
만약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이 생긴다면, 동물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손해배상의 범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미 의원 발의 개정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는 “동물이 다쳤을 때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한다면 특별한 문제없이 교환 가치에 해당하는 비용 정도로 배상을 하면 될 것이지만 동물을 물건에서 제외하고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게 되면, 특히 소유자와 동물 간의 애착관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경우 교환가치 정도의 배상만으로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나아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까지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미 국내 법원 판결에서는 위자료를 인정해주고 있는 추세다.
해외에서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별도로 규정한 경우가 많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3월10일, 세계 최초로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규정을 민법에 신설했다. 독일은 1990년, 스위스는 2002년, 민법을 개정해 동물을 물건에서 제외했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는 50만원을 주고 데려온 개의 치료비가 100만원이 나온 경우처럼 동물의 시장가격을 초과한 치료비용도 손해배상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최소한 동물을 압류금지대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완식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반려동물은 민법상 물건이어서, 일종의 ‘재산’에 해당되므로 견주의 채무불이행시 강제집행을 당할 수 있다”며 “반려동물을 압류금지대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