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범무부장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초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의 양부남 단장(의정부지검장)을 비공개로 만나 수사 내용을 보고받은 뒤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성’ 질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의 독립을 보장해야 할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는 최근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한테서 “박 장관이 5월 초순 양 단장을 최소 한 차례 이상 독대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5일 법무부에 사실 여부를 문의해 보니, 박 장관은 문홍성 법무부 대변인을 통해 ‘양 단장을 만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면담 시점과 경위, 대화 내용 등과 관련해 “그런 것까지는 소상히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박 장관은 양 단장 면담 뒤인 5월11일 문 총장을 만나 “강원랜드 사건 수사지휘를 하지 않는다더니 왜 수사지휘를 하는 거냐”, “수사단이 요구한 수사배심(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을 왜 수용하지 않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당시 문 총장에게는 사전에 양 단장을 따로 만났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장관이 총장에게 했다는 말은 양 단장한테서 구체적인 수사보고를 받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당시는 대검과 수사단의 갈등이 장관에게 구체적으로 보고되지 않았고, 언론 등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관이 수사단의 주장만 듣고 총장을 질책한 것은 사실상의 수사지휘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했다.
박 장관의 행동이 검찰청법 위반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고위 간부를 지낸 한 변호사는 “검찰청법 제8조를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청법 제8조는 정무직인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수사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수사지휘를 하게 돼 있다. 이 변호사는 “8조는 지휘뿐 아니라 수사 관련 보고도 직접 받아서는 안 되고 총장과 대검을 통해서만 하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다른 변호사도 “양 단장이 장관에게 수사 지휘권 발동을 요구하고, 장관이 이를 일정 부분 수용해 총장을 질책했다면 심각한 사안”이라며 “장관은 양 단장의 면담 요청이 수사 관련이면 거절했어야 맞고, 모른 채 만났더라도 수사 얘기를 꺼내면 곧바로 끊고 돌려보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양 단장이 자기 의사를 관철하려고 총장 모르게 장관을 만나 수사 내용을 보고했다면 이 역시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양 단장은 박 장관 면담 뒤인 5월15일 보도자료를 내어 ‘문 총장이 수사심의위 소집 요구를 거절하고, 하지 않겠다던 수사지휘도 5월1일부터 하고 있다’고 공개 비난했다. 박 장관이 문 총장을 질책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한겨레>는 면담 경위 등을 묻기 위해 양 단장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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