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2014년 10월3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브리핑룸에서 6개 고교의 자사고 지정취소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4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6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이 위법하며, 이를 직권 취소한 교육부의 조처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2일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교육부가 직권 취소한 것을 취소해달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시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의 사전 동의 없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것은 사전협의 의무 위반일뿐더러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위법하다”며 서울시교육청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교육부 장관이 직권으로 서울시 교육감의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직권 취소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4년 12월 서울시교육청이 대법원에 소송을 낸 지 3년 8개월 만에 내려졌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주무부처를 상대로 내는 소송은 대법원에서 단심제로 심리된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자사고 지정취소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미리 협의하도록 한 것은 ‘사전 동의’를 의미하므로, 이런 동의 없이 내려진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은 시행령 위반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자사고의 지정 및 취소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국가의 교육정책과 지역 실정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교육부 장관과의 사전 협의 규정도 교육청의 재량을 절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자사고를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하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어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종전 평가결과에 대한 교육감 결재만 남은 상태에서 지방선거 뒤 신임 교육감이 취임하자 교육청의 재량평가 항목을 추가한 수정 평가기준으로 다시 평가를 실시함에 따라 사실상 교육청의 재량평가가 자사고 지정취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됐다”며 “지정 취소된 자사고들은 ‘자사고 제도의 존치를 전제로 한 내실 있는 학교운영 유도’를 주된 목적으로 하였던 종전 평가기준이 ‘자사고 지정취소를 토대로 일반고 전성시대의 기반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평가기준으로 변경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종전 평가 기준에 대한 자사고들의 신뢰는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새로운 교육제도는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시행되고 있는 교육제도를 다시 변경하는 것은 다수 이해관계인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신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더욱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2014년 4~6월 14개 자사고에 대한 평가를 벌여 지정취소가 되는 자사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7월 신임 교육감 취임 이후 새로운 평가지표를 마련해 재평가를 벌인 끝에 10월31일 수정 평가결과에서 70점 미만을 받은 경희고·배재고·세화고·우신고·이대부고·중앙고 등 6개 학교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1월3일 시행령 위반과 재량권 일탈·남용을 이유로 시정명령을 내린 뒤 서울시교육청이 응하지 않자 11월18일 교육청의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했다. 이에 시 교육청은 12월2일 대법원에 소송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가 또는 교육청에 의한 기존 교육제도의 변경은 교육당사자 및 국민의 정당한 신뢰와 이익을 보호하는 전제에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절차적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판결과 상관없이 정부의 자사고··특목고 폐지 정책에는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자사고 지정 취소 때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교육부 역시 단계적으로 자사고·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우리나라 교육발전을 위해 시·도교육감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역시 “시·도 교육감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며 각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를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번 판결은 폭넓은 재량권을 전제로 자사고 평가를 진행하고자 했던 서울시교육청과 박근혜 정부 당시의 교육부 입장 차이에서 이루어진 쟁송에 대한 판결일 뿐”이라며 “이번 판결이 자사고 폐지를 대법원이 반대하는 것으로 과잉해석 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황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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