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 등에 대한 검찰 강제수사가 또다시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원과 검찰은 25일 서울중앙지법이 이날 새벽 양 전 원장과 박 전 처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고법 부장판사), 김아무개 전 기획제1심의관(부장판사)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다고 밝혔다. 법원은 “양 전 원장과 박 전 처장 등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했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이유를 들었다. 양 전 원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은 지난 21일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에도 임 전 차장의 자택·사무실 압수수색 영장만 내줬던 법원은 이번에도 임 전 차장의 사무실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만 허락했다.
최근 임 전 차장의 유에스비(휴대용저장장치·USB) 등에서 법원행정처가 2016년 부산지역 한 건설업자의 뇌물공여 재판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는 등 검찰은 그간 제기된 재판거래 및 법관사찰 의혹을 규명하려면 양 전 원장, 박 전 처장 등 ‘윗선’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고 보고 있다.
아울러 검찰은 양 전 원장 등이 이메일 등을 훼손·변경·삭제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보전조치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마저도 모두 기각했다. 특히 법원은 검찰이 요청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인사총괄심의관실 등에 대한 자료나 법원 이메일·메신저 등에 대한 자료 등에 대한 임의제출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영장에 이어 임의제출까지 거부돼 검찰이 범죄 단서를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사실상 통제된 셈이다.
이 때문에 법원이 “재판 거래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약속과 달리 통상 범죄 수사 때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적용해 검찰 수사를 막아나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 지역 한 검찰 간부는 “법원이 나서서 범죄를 은폐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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