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자동 김앤장 법률사무소 사무실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강제징용 피해자 9명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부터 5년 넘도록 결론을 내지 않아 ‘대법원과 청와대의 거래’ 의혹을 받는 대표적 사건 중 하나다.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을 통해 외교부의 입장을 법원에 전달하는 방안’ 등의 문건을 작성한 행정처 심의관이 지난 2월 김앤장에 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 박찬익 전 사법정책실 심의관(현 변호사)은 지난 2월 퇴직 뒤 김앤장에 들어갔다. 그는 강제 징용 소송에서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주기 위해 “피고쪽 변호사(김앤장)를 통해 외교부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다”는 문건(2013년 9월)을 작성한 당사자로 알려졌다.
당시는 대법원이 2012년 5월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 등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이 하급심을 거쳐 애초 판결 취지대로 대법원에 올라와 있던 상황이었다. 선고를 지연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에 작성된 이 문건은 ‘대일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청와대와 외교부 입장을 ‘백분 반영’해 소송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검토하고 나섰다. “피고 변호사(김앤장)를 통해 외교부 의견서를 접수”하고 “국외송달을 핑계로 자연스럽게 심리불속행 기간을 넘긴다”는 전략도 이 문건에 등장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사건 대리인을 접촉하는 방안을 기획한 것도 부적절하지만, 이를 기획한 당사자가 사건을 대리하는 로펌에 취직한 것은 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앤장은 <한겨레>에 “해당 소송에 박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전해 왔다.
박 전 심의관이 제시한 방안이 실제 실현되거나 시도된 정황도 있다. 김앤장은 대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1963년 박정희 정부의)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고, “(손해배상 인정시) 외국 기업에 사후적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주고, 국제적 신인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며 외교부와 같은 취지의 논리를 폈다.
김앤장은 또 2016년 10월 외교부에 의견서를 요청하기도 했다. 사건 진행 3년 만에 별다른 계기도 없이 외교부 의견을 듣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외교부는 다음 달 곧바로 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배상 판결시)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로 인식되고 과거사 문제에서 갖고 있던 도덕적 우월성까지 잃게 될 것” 등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