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법원 특별조사단(특조단)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대표적 ‘재판거래’ 의혹 사건으로 꼽히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관련 문건들을 확인하고도 추가 조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조단 쪽은 지난 26일 대법원 관계자를 통해 “강제징용 판결 관련 문건들은 키워드 검색으로 추출된 3만5000개 문건에 포함돼 해당 문건을 열람한 바 있다”고 <한겨레>에 알려 왔다. 이어 “해당 문건의 내용에 비춰, 특조단이 주목했던 상고법원 입법 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관련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별도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문건을 열람하고 내용도 파악했지만, ‘사법행정권 남용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지나쳤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문건 내용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이런 설명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처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기획조정실 등이 해외공관 법관 파견 등을 위해 외교부의 ‘민원’을 접수하고, 해당 판결 결론을 미루는 계획을 짠 정황이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양승태 대법원은 또 소송 당사자도 아닌 외교부의 입장을 재판에 반영하기 위해 소송 규칙도 바꿨다. 지난 26일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현직 판사가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법관과 선배 연구관으로부터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2년 판결) 파기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사건이 ‘상고법원 입법’, ‘국제인권법연구회’ 등과 관련 없어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해명도 애초 알려진 조사 목적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5월 공개된 특조단 조사보고서에 ‘재판거래’ 의혹의 조사 범위를 ‘상고법원 입법’ 관련 내용에 제한시킨다는 내용은 없다. 보고서는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거나 훼손한 의혹’ 등에 대해 조사했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같은 판단에 따라 올해 초 대법원 2차 자체조사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긴급조치 손해배상 사건’,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법원 안에서도 특조단의 ‘부실조사’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특조단 쪽은 행정처 현직 판사가 연루된 ‘부산 법조비리’ 관련 재판에 개입하는 내용의 윤리감사관실 문건에 대해서도 “열람했지만 같은 이유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한 부장판사는 “다른 ‘재판 거래’ 의혹보다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특조단이 자의적 기준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면, 직무를 유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법원 안팎에서는 특조단이 문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현직 대법관들이 연루된 사건을 애써 눈감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의 주심 중에는 특별조사단 단장을 맡았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2018년 1~2월), 대법원 2차 조사 당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출을 거부한 김소영 대법관(2018년 2월~)도 포함돼 있다. ‘부산 법조비리’ 사건 관련 윤리감사관실 문건에도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현 대법관)이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현 변호사)에게 보내는 ‘말씀자료’가 등장한다. 한 판사는 “특조단이 ‘살아있는 권력’을 최대한 ‘보호’하려 한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한편 2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입장문을 내고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누구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 역할을 수행해야 할 사법부가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며 스스로 독립을 포기하고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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