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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학교폭력 해결? 학폭위 때문에 되레 아이들이 멍든다

등록 2018-08-01 10:00수정 2018-08-27 21:19

사소한 사건에도 학생부 기재 탓
‘징계→불복→재심→행정소송’
“사실관계 밝히자” 악순환 거듭

자치위원 다수 전문성 떨어지고
객관적 심의 어려운 상황도 많아
엄벌 위주 기조에 재심 청구 급증
전문가들 “관계 회복에 중심 둬야”
처벌 중심의 학교폭력 예방대책으로 되레 상처받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대책을 ‘처벌위주’에서 ‘관계회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 속 학교는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처벌 중심의 학교폭력 예방대책으로 되레 상처받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대책을 ‘처벌위주’에서 ‘관계회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 속 학교는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1. ‘학교 친구들 앞에서 바지 내리고 고추 만진 적 있니?’

김세영(이하 모두 가명) 씨의 아들 형석이(12)는 지난 5월 경기지방경찰청에서 3시간 가량 조사받았다. 경찰 조사에 앞서, 같은 학교 여학생 2명의 학부모는 “형석이가 우리 아이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졌다”며 강제추행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소집을 요청했다.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학교는 추행 등 성폭력 사안을 파악하게 되면,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김씨는 아들이 억울하게 가해자가 됐다고 여긴다. 형석이를 상대로 먼저 ‘변태’라며 헛소문을 낸 여학생들을 문제삼으려 하자, 되레 그 아이들이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며 학폭위를 찾았다는 주장이다. 이에 김씨는 따돌림 등을 문제삼아 여학생들을 상대로 학폭위 소집을 요청했다.

지난 5월 학교는 학폭위 결정을 바탕으로 양쪽 모두에 ‘서면 사과’ 조처를 내렸다. 형석이한테는 특별교육과 심리치료 5시간 처분이 더해졌다. 김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1천만원을 들여 변호사와 행정사를 선임한 뒤 행정소송·심판을 시작했다. “경찰 조사 뒤 아이는 성폭력 뉴스만 나오면 ‘내가 저런 사람이냐’고 물어요. 아이의 억울함은 풀어야죠”

#2. “우리 아이한테 ‘학교생활기록부에 왕따 가해학생 꼬리표를 달고 다니게 해주겠다’고 협박하더군요”

최민영씨는 “우리야말로 억울해서 형석이의 강제추행을 학폭위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딸 유진이와 형석이는 초등학교 5학년 같은 반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형석이가 가슴과 엉덩이를 만진다”고 말했다.

먼저 선생님한테 상담을 요청하고 “좀더 지켜보자”라는 말로 아이를 달랬다. 학폭위를 열면,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 눈에 보였다. 6학년이 되어 두 아이가 각기 다른 반으로 나뉘며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날 형석이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진이가 허위사실로 형석이를 따돌렸다”며 학폭위 소집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유진이가 따돌림 가해자라는 ‘누명’을 쓸 판이었다. 결국 최씨는 지난 1년의 일을 문제삼아 학폭위 개최를 요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씨는 형석이가 그 일로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일을 겪은 뒤 유진이는 피가 날 때까지 머리를 긁는 강박증이 생겼다. “내 아이의 억울함을 풀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누구를 위한 학폭위인 걸까요?” 형석이 부모는 최씨 가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황이다.

처벌 중심의 학교폭력 예방대책으로 상처받는 학생·학부모가 늘고 있다. 특히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학폭위의 심의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도 기록하도록 한 현행 제도 탓에 ‘징계→불복→재심 청구→행정소송(행정심판)’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학생부 기록은 아이의 대학 진학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만큼, 일단 학폭위가 열리면 부모로서는 시시비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학폭위가 지닌 구조적 한계는 이런 학부모의 눈높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교사한테는 수사권이 없고, 주로 학부모로 꾸려지는 학폭위 자치위원한테는 전문성이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부에 남는 민감한 사안을 ‘비전문가’인 학부모들이 결정하다보니, 학교폭력 관련 민원의 상당수는 학폭위원에 대한 불만”이라며 “일부 학부모가 가해·피해 학생 쪽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도 많아 객관적 심의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폭위 결정에 대한 재심 청구는 2012학년도 572건에서 이듬해 1299건으로 급증했고, 행정심판 역시 2012학년도 175건에서 2016학년도 423건으로 늘었다. 엄한 처벌 기조의 학교폭력 예방대책이 교실을 ‘법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징계와 불복의 악순환이 빚어내는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피해를 입힌 쪽과 당한 쪽의 학생·학부모가 서로 자신한테 유리한 사실관계를 치열하게 내세우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의 사과·반성을 통한 피해 학생 치유의 기회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이에 여러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예방대책의 방향을 ‘처벌 위주’에서 ‘관계회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우 경기도 남수원초등학교 교사(생활인성부장)는 “일부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은 그것대로 철저히 조사하고 필요한 조처를 내려야겠지만, 성장기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벼운 갈등이나 실수는 최대한 교육적으로 접근해 서로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다음달 시작하는 ‘시민참여 정책숙려제도’의 두번째 과제를 학교폭력 관련 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정한 것도 현행 학폭위 제도에 대한 비판 여론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학교폭력과 관련된 제도가 대부분 학교폭력예방법 등에서 비롯한 만큼 법 개정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

현재 국회에 23건의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학폭위 전문가위원을 확대하는 내용이 7건으로 가장 많고,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자는 안도 2건 발의됐다. 서울시교육청도 학교폭력을 사안에 따라 이원화하는 정책을 제안한 상태다. 가벼운 사안은 학교장이 종결처리하고, 복잡한 사안의 경우 교사들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에서 담당하게 하자는 게 핵심이다.

황춘화 홍석재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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