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찾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논의하면서, 주유엔(UN) 대표부 법관 파견을 함께 청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2013년 10월말 임종헌 당시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청와대를 방문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주유엔대표부 법관 파견을 청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실장은 이날 그해 9월 대법원에 재상고된 ‘강제징용’ 소송 경과와 향후 방향 등을 함께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듬해 2월부터 주유엔 대표부 파견이 재개됐다.
‘강제징용’ 사건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으로 꼽히는 대표적 사건이다. 2012년 5월 대법원 1부는 신일철주금·미쓰비시 등 전범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이 사건은 같은 취지의 하급심 판단을 거쳐 2013년 8~9월 대법원에 재상고됐다. 이런 경우 통상 소부에서 심리불속행 되지만, 해당 사건은 5년간 대법원에 계류된 끝에 지난달 갑작스럽게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외교부를 통해 해당 소송을 연기하거나 파기하는 대가로 청와대로부터 해외에 파견할 법관 자리를 얻어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청와대의 개입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2~13년 행정처에서 작성한 문건에는 “김기춘 비서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등 청와대 인사위원회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대목이 다수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2월 기획조정실 작성 문건에는 “BH(청와대) 협조요청사항. 재외 공관 법관 파견에 적극 협조. 외교부의 긍정적·전향적 태도 유도” 등 내용도 있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중단됐던 해외 공관 및 국제기구 법관 파견 제도는 박근혜 정부 취임 뒤인 2013년부터 재개됐다. 현재 주유엔 대표부, 주제네바 대표부, 네덜란드 대사관 등에 법관 해외 파견이 이뤄지고 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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