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국민 기본권을 중대하게 제한하는 내용으로 ‘테러방지법’ 입법 전략을 짠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의 내용이나 형식에 비춰 박근혜 청와대에 상납할 법안을 사실상 ‘대리 작성’해 준 것으로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처는 2015년 3월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방지법안’ 문건을 작성했다고 한다. 당시는 2015년 3월5일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로부터 피습당한 직후로, 청와대와 여권에서 테러방지법 논의의 군불을 때던 시점이었다. 테러방지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처음 발의됐지만, 인권침해 논란 끝에 15년간 입법이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 권한도 없는 사법부가 발 벗고 나서 ‘청와대 맞춤형’으로 보이는 법안을 짜준 것이다.
‘외로운 늑대’ 문건은 이듬해 2월 국회에 발의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의 청사진과도 같다. 문건은 김씨 행위를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로 규정한뒤, “대테러 업무가 경찰·검찰·군·국정원 등으로 분산돼 효과적으로 예방하지 못한 것이다. 법적 근거와 장비만 있었다면 신원 조회 등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문제”라고 지적한다고 한다.
문건은 이어 ‘입법이 필요한 대응방안’과 ‘별도의 입법 없이도 당장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을 나눠 구체적 내용까지 꼼꼼히 제시했다고 한다. 이 중 ‘법안에 포함돼야 할 내용’에는 “사전적 정보수집이나 불시 검문, 감청 권한 포함”, “보호관찰, 전자장치 부착 등 처분 대상에 테러를 포함” 등이 ‘1순위’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증거능력 부여 완화 △영장주의 예외 △대테러기금 조성 등도 제안됐다고 한다. 문건은 이어 “(피습 사태가 벌어진)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며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야당과 언론이 반대할 수 있으니 적기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당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사법개혁 과정에서 사법부 스스로 쌓아온 원칙을 폐기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실제 테러방지법은 국민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야당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거친 끝에 이듬해 2월 국회를 통과했다.
문건이 작성된 때는 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통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시점이다. 검찰은 행정처가 청와대 요청을 받고 법안을 사실상 ‘상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문건에 작성자 이름이나 작성 부서가 명기되지 않은 점에 비춰 외부 전달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