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가 서울 서초구에 있는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1차 수사 기간이 열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경수(51) 경남도지사의 구속영장을 ‘초읽기 청구’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김 지사 관련 의혹 규명은 출범 때부터 이번 특검팀의 성패를 좌우할 문제로 거론됐다. 수사 기간 연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법원의 영장 발부·기각 결정 이후 보강 수사할 시간조차 없이 빠듯하게 일정을 짠 점 등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고 노회찬 의원,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의 정치자금 의혹을 파다가 수사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특검 안팎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허 특검은 김 지사와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 일당에 대한 조사 결과와 그간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김 지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2016년 11월9일 김 지사가 김씨가 운영한 느릅나무 출판사에서 댓글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해, 댓글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 특검이 적용한 김 지사의 핵심 혐의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시시티브이(CCTV) 같은 ‘움직이지 않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특검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가 작성한 ‘20161109 온라인정보보고’ 문건 속 항목들 가운데 ‘킹크랩 설명 부분’이 포함된 점에 주목했다. 김 지사가 이 문건 속 다른 항목들에 대해선 “본 기억이 있다”면서도 킹크랩 부분에 대해서만 “보지 못했다”고 한 부분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드루킹 쪽에서 확보된 증거나 진술이 얼마나 믿을 만 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다. 지난 10∼11일 김 지사와 김씨의 대질신문 과정에서 김씨는 그간의 “‘킹크랩 시연회’ 당시 김 지사로부터 100만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번복했다. 앞선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루킹 일당이 ‘격려금 100만원을 한 번만 받은 것으로 하지 말고 다달이 받은 것으로 하자’는 취지로 모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점들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 시연회 관련 드루킹 쪽 증거를 모두 배제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특검은 이번 영장 청구 때 애초 김 지사에게 적용하려 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제외했다. 일본 오사카 총영사 청탁과 관련해 김씨가 ‘널뛰기 진술’을 한 것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직접 작성한 문건에 ‘2017년 6월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둑이(김 지사)를 만나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했다’고 썼지만 최근 대질신문에선 일시·장소·사람까지 모두 번복했다. 특검 역시 김씨 진술을 완전히 못 믿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특검이 이번 수사의 하이라이트 격인 김 지사 영장 청구가 적용 혐의 등에 대한 아무런 사전 공지나 사후 설명도 없이 이뤄진 점도 곱씹어볼 만 하다. 드루킹 특검법(12조)은 특검이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외의 수사과정에 대하여 언론브리핑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전 박영수 특별검사 수사 등에서 보면 특검이 영장청구 배경이나 이유 등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수사 동력을 확보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을 기회였다. 하지만 지난 15일 한 언론이 영장청구 사실을 보도하자, 특검은 영장을 접수한 사실만을 확인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드루킹 쪽 진술이 흔들리면서 특검이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김 지사 관련 의혹 수사는 특검 출범 전부터 최대 쟁점이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쫓기며 한다는 것만 봐도 영장청구까지가 쉽지 않았겠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영수 특검 때 ‘수사 정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은 수사 기간 만료(2월28일)가 한 달 넘게 남은 지난해 1월16일 청구됐다. 한 차례 기각 뒤 박 특검은 한 달 가까운 충분한 보강수사 과정을 거쳐 같은 해 2월17일 이 부회장을 구속했다.
한편 김 지사 영장에 대한 법원 실질심사는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가 맡아 17일 오전 10시30분부터 진행한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영장심사는 정식 재판과 달리 혐의 입증보다는 다툼의 여지가 있는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지 등에 따라 갈린다”며 “양쪽 입장이 엇갈리고 있고 피의자가 현직 도지사 신분이라는 점 때문에 법원이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검이 김 지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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