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 전형 확대와 수능 절대평가 전면도입 보류 등으로 사교육 시장이 활기를 띌 것으로 보인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입시경쟁과 사교육비 부담, 이에 따른 교육 격차 등을 해소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개편의 방향은 이런 목표와 거리가 멀어 ‘교육정책 후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7일 교육부의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 발표를 보면, 정부가 강조해온 ‘공교육 정상화’와 엇박자를 내는 정책이 여럿 눈에 띈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각 시·도교육감과 많은 교육단체 등이 “경쟁교육 극복과 수업혁신을 위한 교육계의 노력을 뒷걸음치게 만든 누더기 정책”이라며 반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초 교육부는 2015년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문·이과를 통합해 다양한 영역을 두루 가르친 뒤, 학생의 진로가 시험성적이 아닌 학습 ‘과정’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입시 준비 위주로 이뤄졌던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와 달리 교육부는 이날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을 발표하며 “학생의 재도전 기회를 위해 정시 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각 대학에 권고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을 확대한다는 교육부의 이날 발표는 고교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객관식 정답 맞추기’로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수능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것인데, 기존 공교육 정상화 방향과 완전히 배치된다.
당장 정부가 공식화 한 ‘학생의 재도전 기회’ 보장을 위한 정시 확대는 재수생과 수능 사교육 업체가 크게 환영할 내용이다. 여기에 수능 절대평가 전면도입 시점이 기약없이 늦춰진데다 기하와 과학2가 수능 진로선택과목으로 들어오게 된 만큼, 수능 입시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수능 과목 추가는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라고는 하지만, 수능 과목이 늘어서 가장 좋은 건 입시학원일 수밖에 없다. 절대평가 전면도입 연기로 수능 변별력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학생·학부모한테는 부담이다. 물론 입시업체한테는 호재다.
정시 확대는 교육부가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정시 확대를 통해 수능의 위상이 높아지면, 내신에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사고 진학을 망설일 필요가 줄어든다. 수능 등 문제풀이식 입시 준비에는 일반고에 견줘 자사고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앞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성명을 내어 “교육부의 정시 확대 방침은 2015교육과정의 철학에 정면 배치되며 학교 현장의 대혼란을 빚을 수 있는 퇴행”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교육계가 지난 10년여간 교육개혁의 하나로 추진해온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와 고교학점제는 2025학년도로 미뤄졌다. 내신 성취평가제는 현행 고교 성적 평가를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지 않고 ‘3단계(A-B-C) 성취도’를 기록하는 일종의 절대평가 방식이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들도 대학생들처럼 원하는 과목을 신청해서 듣고, 필수·선택과목에서 일정 학점을 채우면 졸업자격을 주는 제도다. 이 둘은 나란히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 공약이었지만,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먼 시점으로 미뤄진 데다 그나마 확정된 것이 아니다. 특히 고교학점제는 교육부가 올해 105개 학교에서 시범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라 교육 현장과 정책에서 수년간 엇박자가 불가피하게 됐다. 현 정부로서도 임기가 끝나는 때라 사실상 지킬 수 없는 공약이 됐다.
이에 교육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교육 핵심 공약에 말을 바꾸면서 향후 3년간 교육개혁이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논평을 내어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교육공약을 파기한 것을 넘어 세계 교육의 보편적 흐름에 역행하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학교교육정상화를 위한 교육혁신연대도 성명에서 “정부가 2015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교육혁신을 후퇴시켰다”며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 고교체제 개편을 종합적으로 연계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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