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기금 운용체계 개편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나. 내가 낸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이는 건 아닌지 의심부터 생긴다.”(20대 국민연금 가입자)
2015년 ‘외압’에 따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기금 운용체계 개편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민연금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려면, 기금 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자본·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높이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정책자문안을 통해 “향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높이면 기금 규모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가입자 의사결정 권한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기금 운용체계 민주화·상설화 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번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보면, 기금은 2041년 최대 1778조원까지 증가한 뒤 204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57년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체계는 기금운용위원회의 투자정책 결정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실무 집행 등으로 나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기금운용위는 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다.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각 부처 차관 4명, 민간위원 14명(사용자 대표 3명, 노동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전문가 2명) 등 모두 20명이 여기에 참여한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과정을 되짚어보면,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해당 안건을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 산하 의결권 행사 전문위에 넘기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결정을 내리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정부 입김을 견제하려면, 사회적 합의 구조로 만들어진 기금운용위를 상설기구화하고 전문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기금운용위는 별도 사무국 없이 1년에 5~6회 모이는 분기별 회의체로 운영되고 있다. 위원들에겐 안건 제안권이 없으며,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하고 상정한 안건에 대해 위원들이 수동적으로 심의·의결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기금운용위를 지원하는 복지부가 큰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국정과제에서 기금 운용체계 혁신 및 투명성 제고의 일환으로 기금운용위 상설화와 권한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금 운용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올해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위해 구성된 위원회 가운데 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기금 운용체계 개편을 위한 법률이 제·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기금운용위 활성화를 위해 복지부 연금재정과를 확대해 사무국 역할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종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기금운용위 상설화는 시장·정부로부터 독립을 위한 방안인데, 복지부에 더 기대자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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